<내 친구의 소원>은 죽음을 앞에 둔 소년과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소년의 이야기다. 영국 리버풀에 사는 두 소년의 이야기는 유치하고 발랄하다. 그러다 이내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브루스 웹 감독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프로듀서로 영화 일에 뛰어들었고, 5년간 어렵게 돈을 모아 <내 친구의 소원>을 만들었다. “작게 시작한 영화라 개봉도 못하고 지하 창고에서 필름이 썩어가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작품이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월, 제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를 찾았던 브루스 웹 감독을 만났다.
-제작자로 커리어를 쌓았다. =원래는 사진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영화 스튜디오 바닥 쓰는 일을 했다. 바닥 쓰는 일을 하다가 전기공 일도 하게 됐고,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게 됐다. 사람들 만나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일이 즐거워서 프로듀서가 됐는데 단편을 40여편 제작하다보니 일에 질렸다.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런던의 무료 직업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영화제작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고 사생활도 불만족스러웠다. 나 자신이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다. 제작 일은 돈을 다루는 일인데 거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직업 상담하던 분이 영화를 연출해보라더라. 그 길로 직업을 바꿨다. 후회하진 않냐고? 연출하는 게 너무 즐겁다.
-<내 친구의 소원>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상했나. =시나리오 모집공고를 냈다. 100편 가까운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는데 그중 이게 유독 눈에 띄었다. 영국에선 미성년자들의 섹스 이야기가 민감한 소재다. 신인감독이 그런 소재로 영화 만든다는 것 때문에 돈 끌어모으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내 나이가 39살인데 5년 동안 고생을 하다보니 이렇게 삭았다. (웃음)
-<내 친구의 소원>은 <굿바이 마이 프렌드>와 <아메리칸 파이>를 섞어놓은 것 같다. =대박 영화들과 비교돼서 신난다. 그런데 <내 친구의 소원>은 아주 작은 영화다. 극장도 한 군데 정도에서 상영하다가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죽는 날엔 ‘아, 나도 영화 한편 만들었구나’ 회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12월에 런던에서 정식 개봉한다. <아메리칸 파이>와 비교하는 건 글쎄, 우리 영화에는 역겹거나 거친 장면은 거의 없다. 원래 시나리오는 더 유머러스했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 사람들이 웃고 넘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영화를 만들면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시한부 아이를 소재로 하면서 단순한 코미디영화를 만드는 건 못하겠더라. 영화 속 유머는 시나리오작가의 솜씨이고, 난 감동적인 부분에 중점을 뒀다. 두 영화처럼 이 영화도 돈을 좀 벌면 좋을 텐데. 이 영화 때문에 지금 파산 상태다.
-로비와 지기의 머릿속은 ‘여자’와 ‘섹스’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십대는 어땠나. =로비와 지기는 나와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다. 15살에 친구와 난 섹스에 엄청 집착했다. 처음에는 총각딱지를 떼는 게 목적이었는데, 한번밖에 없는 기회니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파트너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점차 발전했다. 그런데 우리 둘 중 한명은 엉뚱한 사람하고 해버렸다. 누군지는 절대 말 못한다. (웃음)
-지기 역의 유진 번, 로비 역의 조시 볼트는 데뷔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2년 동안 4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오디션했다. 유진은 보자마자 딱 얘다 싶었고, 조시는 최근에 존 레넌에 관한 영화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에 출연했다.
-영화의 배경인 리버풀이 고향인가. =내가 정확히 어디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어릴 때 입양됐다. 내 배경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 속 지기의 이야기가 좋다. 지기도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나도 모르니까.
-죽기 전 소원은 뭔가. 로비보단 거창한 소원이어야 하지 않겠나. =당장 오늘 죽는다면 썩 기분은 안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딱히 이건 꼭 해야겠다 싶은 건 없다. 음,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해양생물 보호단체의 일들에 관심이 많은데, 죽기 전에 우리의 환경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 지구를 살려내기 위한 일이 좋을 것 같다.
-다음 작품 구상은 끝났나.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남편을 구타하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에선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법적으로 무조건 남자가 죄를 뒤집어쓴다. 그래서 영국에는 부인한테 맞고 살면서 정신적인 피해를 받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 사적인 얘긴데, 나도 힘들게 자랐다. 여러 사람을 사귀다보면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학대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도 그런 관계가 몇번 있었다. 내가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가 누굴 비난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 왜 그게 됐는지다. 다음 작품은 <내 친구의 소원>보다 더 슬픈 영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