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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앤더시티] 死처럼 음악처럼
안현진(LA 통신원) 2011-01-07

음악을 중심에 두고 느린 호흡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멤피스 비트>

미국 드라마에서 가장 흔한 장르는 수사물이다. 수사물이라고 하면 경찰, 형사 또는 사립탐정이 범죄사건을 적법하게 (혹은 위법한 수단이라도 어쨌든 동원하여) 풀어나가는 에피소드식 드라마를 말하는데, <로 앤 오더> <굿 와이프> 등의 법정물까지도 포함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은 물론 법집행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범죄와 연루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포함한 에피소드식 드라마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 장르를 향한 미국의 TV시청자 그리고 관계자들의 사랑은 유난할 정도인데, 위키피디아가 전하는 통계에 따르면 ‘경찰수사물’(Police Procedural)이라고 분류될 이 장르는 드라마, 게임쇼, 리얼리티 TV쇼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어 지난 60년간 미국에서만 무려 300개 이상 제작되고 방영됐다. 드라마 하나당 중요한 캐릭터가 최소 4명 등장한다고 하면 60년간 TV에 출연했던 기억할 만한 캐릭터만 해도 1200명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사물 in 멤피스 with 블루스

2010년 현재 방영 중인 경찰수사물만 꼽아도 벌써 10편이 넘어가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드라마마다 특별한 캐릭터 및 설정을 내세우는 건 예사가 됐다. 뼈를 이용해 범인을 밝히고(<본즈>), 추리소설 작가가 경찰 수사에 참여하며(<캐슬>), 전직 사기꾼이 FBI에 협조하며(<화이트 칼라>),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해 사건을 해결하는 프로파일러들이 활약한다(<크리미널 마인드>). (한국말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멘탈리스트>도 느물느물 이죽거리며 독특한 능력으로 수사에 보탬이 된다. 10년 전만 해도 사립탐정 정도가 법 집행기관 외의 인력이었다면 2010년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민간인이 경찰 수사에 참여해 범죄를 해결하는 선까지 범위가 확장됐다. 이렇게 설명하고 보니 ‘엘비스 프레슬리 헌정 가수로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형사’는 꽤 평범하게 들린다. 낮에는 강력반 형사로, 밤에는 블루스 가수로 활약하는 형사를 중심에 놓은 <TNT>의 TV시리즈 <멤피스 비트>는, ‘로큰롤의 황제’ 또는 ‘The King’이라고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뮤지션으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으며, 마흔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둘 때까지 지낸 도시 멤피스를 무대로 펼치는 ‘평범한’ 수사물이다.

거짓말탐지전문가의 도움은커녕 과학수사의 혜택도 거의 받지 못한 채 형사와 정복경찰관이라는 순수 경찰력만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는 <멤피스 비트>가 보통의 수사물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멤피스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멤피스는 녹스빌, 내시빌, 차타누가와 더불어 테네시주의 4대 도시 중 하나로, 미시시피강과 울프강이 합류하는 강 하류에 위치한다. 멤피스라는 지명은 고대 이집트의 도시 ‘멤피스’에서 따왔는데,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지리적 유사성 덕분에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멤피스의 지역색을 드러내는 절대적인 요소는 문화, 그중에서도 음악이다.

<멤피스 비트>의 파일럿 초반 1분은 대사 한마디 없이, ‘수사물 in 멤피스 with 블루스’로 정리될 이 드라마의 설정을 설명한다. 늦은 밤, 클럽의 무대 위, 하이-해트 심벌즈가 들썩이고 기타의 스틸현이 튕겨지면 발끝으로 박자를 맞추던 구레나룻을 기른 한 남자가 두툼한 레트로 마이크를 오른손에 한번, 왼손에 한번 번갈아 감싸며 노래를 시작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이다. “내 사랑이 떠나간 뒤, 지낼 곳을 찾아야 했어. 외로움의 길 끝에 있던 ‘하트브레이크 호텔’.” 첫 소절이 끝나기 무섭게 관중은 환호한다. 그리고 장면은 노란 폴리스라인이 둘러진 범죄현장으로 전환된다. 조금 전까지 리듬을 타던 ‘미스터 구레나룻’의 허리춤에는 금빛의 경찰배지가 반짝인다.

‘미스터 구레나룻’의 이름은 드와이트 헨드릭스(제이슨 리). 꽃미남도 근육남도, 그렇다고 ‘차도남’도 아닌 드와이트는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멤피스에서 민중의 지팡이로 봉사하는 자칭 ‘멤피스 지킴이’로, 범죄사건에 대한 놀라운 직감을 가졌다. 그렇다고 <멤피스 비트>가 주인공의 직업적 본능에 기대어 사건을 해결하는 무책임한 수사물은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미련하다 싶을 만큼 우직하게 수사 절차를 따른다. 그리고 그 절차가 막힐 때마다 윤활유 또는 계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드와이트의 직감이고, 사건은 결국 부드럽게 풀려나간다. 그래서인지 <멤피스 비트>는 다른 수사물과 비교했을 때 호흡이 길고 느린 편이다. 현란한 과학수사의 혜택과 인체내부를 탐험하는 카메라워크도 <멤피스 비트>의 ‘느리게 걷기’에는 꼬리를 내리는 기교일 뿐이다.

음악의 샘은 마르지 않고

그리고 시대에 역행하는 느린 호흡을 실속있게 채우는 것은 음악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부커 T. 존스, 샘 쿡, 아이작 헤이스, 아레사 프랭클린 등 멤피스가 키워낸 블루스 뮤지션들의 멜로디가 시작과 끝,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운다. <뉴욕데일리뉴스>는 <멤피스 비트>가 사용한 음악들을 말하며 “멤피스가 그 무대가 된 이상, 훌륭한 음악이 부족해 쇼를 중단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으며, 드라마의 음악을 담당하는 뮤지션 케빈 무어는 멤피스를 두고 “사운드트랙이 흐르는 도시”라고 일컬었다. 그만큼 음악이 <멤피스 비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시즌1을 구성한 에피소드 10편의 제목 모두가 블루스 음악에서 따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It’s Alright, Mama>(시즌1, 에피소드1)는 노인학대에 시달렸던 멤피스의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은퇴한 DJ 도티 콜린스 사건을 다루었고, <Love Her Tender>(시즌1, 에피소드3)는 흑인 해병과 사랑에 빠져 도피를 꿈꿨던 여고생 이야기를, <Polk Salad Annie>(시즌1, 에피소드4)는 오빠를 살인청부한 매정한 여동생의 사건을 다루는 등 노래 가사와 에피소드의 플롯이 연결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선곡됐다.

주인공과 맞서는 극악무도한 악당이 없는 구조 역시 요즘 수사물과 다른 점이다. 드와이트의 캐릭터가 너무 강렬한 탓일까, 범죄를 들춰보면 슬픈 이야기가 많고 용의자들도 유약하거나 존재감이 없다. 파트너인 ‘화이트헤드’ (샘 헤닝스), 부하 경찰관 데비 서튼(DJ 퀄스) 등 드와이트 주변의 남자 캐릭터들도 두드러지기보다는 묻히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드라마 속 드와이트에 대적하는 맞수들은 여자들이다. 천진난만 소녀 같은 엄마 폴라와 ‘교과서적인 수사’를 강요하는 부서장 타냐(알프레 우다드), 그리고 충동적으로 결혼한 뒤 8주 만에 이혼하고 ‘프렌즈 위드 베네핏’(Friends with benefits: 감정적으로 얽힘없이 성관계를 맺는 두 친구)으로 남은 알렉스가 그 주인공들. 그중에서도 호적수는 부서장 타냐인데, 초반에는 상반된 업무 태도 때문에 둘 사이에 알력다툼이 펼쳐지지만, 이 평화로운 수사물에서 긴장이 오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지, 첫 에피소드가 끝날 무렵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이로 발전해버린다. ‘직장 와이프’라기보다는 ‘직장 엄마’에 가까운 타냐는 자식처럼 드와이트를 아끼고, 드와이트 역시 타냐를 존경하고 따른다.

<멤피스 비트>는 조지 클루니가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제이슨 리가 <마이 네임 이즈 얼> 종영 뒤 차기작으로 선택한 것으로 방영 전부터 유명세를 얻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의 이름에 어울리는 시청률이나 호평이 따른 것은 아니다. 사건 구조의 밀도 역시 ‘수사물’이라는 장르로 한데 묶일 경쟁작들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TNT>는 <멤피스 비트>를 가을 시즌에 정규 편성하지 않고, 그보다 조금 앞선 6월에 출발시켰다. 새로운 캐스팅과 스타일로 무장한 드라마들이 대거 등장하는 가을에는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략은 <멤피스 비트>에 새로운 기회를 약속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오래가는 것이 강한 것”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까. <론 스타>(<FOX>), <아웃로>(<NBC>), <마이 제네레이션>(<ABC>) 등 공중파 네트워크들이 비장하게 준비했으나 결실을 맺을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했던 단명한 드라마들을 생각하면 <멤피스 비트>가 성취한 ‘시즌2로 향하는 티켓’이 궁색하지만은 않다.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블루스의 샘이 마르려면 아직은 갈 길이 멀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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