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2>는 ‘올해의 독립영화’를 넘어 ‘올해의 영화’가 됐다. 연말을 맞아 열리는 여러 시상식에서는 <경계도시2>의 이름이 심심찮게 들려오며, <씨네21> 역시 연말을 맞아 집계한 ‘올해의 영화’ 4위로 <경계도시2>를 선정했다. 그러나 홍형숙 감독은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우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에 대한 ‘마음의 빚’과 연평도 사건으로 더욱 심화된 분단문제를 생각하면 <경계도시2>가 말하는 담론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그 무거운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홍형숙 감독은 남편이자 <경계도시2>의 PD였던 강석필 감독과 함께 그들 삶의 터전인 성미산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에게 신작 계획과 <경계도시2>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최근 <경계도시2> 관련한 수상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여성영화인축제에서 독립·단편부문상을 받았고, 감독들이 선정하는 디렉터스 컷 어워즈에선 ‘올해의 독립영화감독상’을 받았다. =정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리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다. <경계도시2> 속 상황이 진전되거나 대책이 나오거나 해결 지점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무거워지니까 마음이 편치 않다. 송(두율)선생님과 여러분을 생각하면 개운치가 않다.
-공교롭게도 올 연말 최대의 이슈는 ‘북한’이다. <경계도시2>가 이념문제를 다룬 영화인 만큼 연평도 포격 사건을 보면서도 생각이 많았겠다. =한두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안 그래도 얼마 전에 한국 다큐 텍스트를 다루는 수업에서 <경계도시2>를 상영했다. 연평도 사건이 그맘때 터졌다. 20대 초반 학생들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국가안보’였다. 이 낯선 단어가 학생들에게서 툭 튀어나오더라. <경계도시2>의 담론 중 하나가 분단과 직결된 문제잖나. 그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현실 속에서는 굉장히 날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두율 교수와는 아직도 연락하나. =가끔 연락한다. 한편으론 마음 가볍게 ‘안녕하셨어요?’하기가 쉽지 않은데…. 선생님이 워낙 친절하신 분이라 메일을 보내면 웬만하면 짧게라도 답장을 해주신다. 부드러운 남자다. (웃음) <경계도시2> 모니터링을 해준 친구 중 한명이 최근 독일에 가서 교수님을 만나뵙고 와 간접적으로 소식을 들었다. 잘 지내신다고 알고 있다. 얼마 전에 출시된 <경계도시> 1, 2편 DVD를 보내드리며 연말, 새해인사를 대신하려고 한다.
-10여년 동안 진행해왔던 <경계도시> 프로젝트가 올해 마무리됐는데 개인적인 소감은 어떻나. =<경계도시> 1, 2는 내게 능선처럼 느껴진다. 1편이 비교적 작은 기획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작은 능선이었다면 2편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의도보다 훨씬 더 큰 상황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듯한 커다란 능선의 느낌이다. 내가 1990년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으니 절반의 시기를 <경계도시>에 매달린 거라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작업자로서도 그렇고 개인의 삶으로서도 그렇고, <경계도시2>를 개봉한 올해는 등산으로 치면 산 중간지점까지 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여전히 갈 길이 바쁘지만 한편으론 숨을 고르면서 뒤를 돌아보며, 오랫동안 오긴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성미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볍고 재밌고 밝은 작품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궁리하다가 내가 살고 있는 성미산 마을 이야기를 해보면 괜찮겠다 싶었다. 이 마을이 들여다보면 참 흥미로운 곳이다. 사람살이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더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전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라 다양하고 언제든지 형태가 바뀔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보여서 작업이 참 재밌다. 마침 강석필 PD가 본인의 연출작으로 성미산 마을 프로젝트 연작 시리즈를 기획해 4년 전부터 꾸준히 촬영해오고 있었다. 내년까지 중편 정도로 완성할 생각인데, 지금은 공동연출로 갈 것인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함께할지 고민 중이다.
-어떤 내용을 담을 건가. =일단 성미산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알다시피 (홍익재단의 학교 이전으로 인한) 공사가 강행되고 있고, 산은 이미 깎일 대로 깎여 흙더미만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공사와 관련된 내용들이 들어갈 거다. 또 성미산 연작 시리즈로 준비해오던 공동육아 1세대의 아이들 이야기, 부모세대 이야기,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하려 한다.
-얼마 전에 ‘성미산 100인 합창단’ 공연이 있었다. =어차피 (공사와 관련된) 싸움이 길게 가야 하니 중간정산도 해보고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차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기획한 합창단이다. 실내에서, 홍대 놀이터에서, 공사장에서 한번 공연했다. <렛 잇 비>를 “(성미산)냅둬유~”로 개사해 부르고…. 사람들이 노래 부르다가 많이 울었다. 2년 동안 싸워왔던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왠지 짠해지고, 비장해지고. 집회나 시위때 확성기 통해서 주민들이 말했던 목소리를 뛰어넘는 강렬하고 진한 울림이 노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