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유럽에 비해 이른바 비주류권 영화의 환경이 미흡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육, 제작, 배급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그러하다. 다큐멘터리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아시아에서는 1989년에 출범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일본) 정도가 아시아의 다큐멘터리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영화제였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아시아에서 다큐멘터리의 환경이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각종 다양한 미디어 창구의 확산이 그 첫 번째 요인이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인적 자원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다.
1989년 인권과 환경 보전의 일환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한 인도의 매직 랜턴 파운데이션은 2004년부터 특정 주제의 다큐멘터리영화제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인도 뭄바이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른 세계는 숨쉬고 있다’(Other worlds are breathing) 란 주제의 다큐멘터리영화제를 개최하였고, 2008년부터는 ‘지속적인 저항’(Persistence Resistance)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있다. 매직 랜턴 파운데이션을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배급망 구축이다. 매직 랜턴 파운데이션은 2005년부터 ‘언더 컨스트럭션’(Under Construction) 이라는 이름의 배급사업을 시작하였다.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영화의 인도 내 배급망 구축은 인도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 다큐멘터리 배급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은 올해 6월(케랄라국제다큐멘터리 & 단편영화제), 9월(푸네), 2011년 1월(뉴델리)에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네트워크 오브 다큐멘터리(AND) 지원작의 쇼케이스를 기획하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영화제 차원의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프로그램은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의 AND가 시초이다. 그런데 지난 1, 2년 사이에 이런 지원제도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9년에 전주국제영화제가 ‘JPP 다큐멘터리 피칭’을 시작하였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DMZ Docs Project’를 시작하였다. 올해 홍콩에서도 새로운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홍콩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아시안 사이드 오브 닥’(Asian Side of the Doc, ASD)이 그것이다. 그런데, ASD는 주최가 홍콩영화제가 아니다. 프랑스 라로쉐의 국제 다큐멘터리 마켓 ‘서니 사이드 오브 닥’(Sunny Side of the Doc)이 아시아 지역의 우수한 다큐멘터리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하는 행사이다. 올해 1회 행사를 홍콩영화제에서 개최하였으며, 2회는 내년 3월7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ASD는 아시아와 유럽 합작 다큐멘터리 개발을 주목적으로 하는 행사이다. 그런가 하면 중화권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을 하는 네트워크 기관 CNEX도 주목할 만하다. ‘Chinese Next’ 혹은 ‘See Next’라는 의미의 CNEX는 2007년부터 매년 특정 주제를 내걸고 피칭행사를 하고, 지원작을 모아서 CNEX다큐멘터리영화제도 개최한다. 2009년에는 6편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였고 2010년의 주제는 ‘위기와 기회’였다.
2010년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또 하나의 화두는 다른 대륙과의 공조다. 먼저, ‘월드 다큐멘터리 익스체인지’(World Documentary Exchange, WDE).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캐나다의 핫독스(Hot Docs),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간 협력관계 플랫폼으로 유럽, 아시아, 북미지역 다큐멘터리 세일즈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결성된 연합체이다. 현재 ‘MEDIA Mundus Programme’에 예산 지원 신청을 해 내년 1월에 결과가 나온다. 또한 스위스 다큐멘터리 세일즈사인 퍼스트 핸즈 필름(First Hands Film) 주도하에 각국 전문가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전문 네트워크 ‘Shortcut2Quality(S2Q)’를 구축해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및 투자, 홍보, 마켓 진출 등 다양한 지원을 할 예정인데, AND가 아시아 지역 파트너로 참가한다. S2Q 역시 ‘MEDIA Mundus Programme’에 지원을 신청해둔 상태다.
또한, 내년과 내후년에는 아시아와 호주에서 두개의 새로운 다큐멘터리영화제가 출범한다. 타이에서는 내년 1월에 살라야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그리고 2012년 3월에 호주의 시드니에서 도코드라마(Docorama)가 출범한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아시아가 세계 다큐멘터리계에서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