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종교는 □□이다’라는 빈칸을 채우라고 한다면 요즘 같아서는 분쟁이나 권력이라는 말이 썩 잘 어울리지 싶다.
그런데 한때는 공포였다. 오대양 사건에서 휴거 사건으로 이어진 80년대 말 90년대 초,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는데, 최루탄과 삐라, 휴거 유인물은 그 양과 출현 빈도가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압도적이었는가 하면 휴거쪽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내가 어리고 겁이 많았던 탓이겠으나, 문제는 진짜 가출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한 다리 건너 한명쯤은 있었다. 그런 일은 지금도 있다. 누구의 어머니가 믿는 묘한 종교,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 누군가가 이상한 종교 관계자로 목소리 변조하고 TV에 출연하는 일. 이제는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 한 다리 걸칠 필요도 없다. 종교 때문에 모든 걸 저버린 사람에 대한 속상함을 토로했더니 누가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현실에 지는 사람이 많은 거야.”
내게 <1Q84>보다 <약속된 장소에서>가 더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내가 아직 그렇게 떠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속된 장소에서>는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 피해자들을 만난 인터뷰집 <언더그라운드>의 속편에 해당한다. 어떤 의미의 속편인가 하면, 옴진리교 신도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주요 관계자가 아니다. ‘평범한’ 신도들이다.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어떻게 생활했는지, 일반 신도가 보기에 지하철 사린사건은 어떤지. 이 일반 신도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섬뜩할 정도의 확신(이쪽에서 보기에는 한참 어긋난)에 놀라게 되기도 하고, 출가를 하지 않은 일반 신도에게도 스토커처럼 사건 이후 몇년간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은 경찰에 되레 더 소스라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이런 대목들에서 자꾸 멈추어서게 된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시스템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사람, 어딘가 잘 안 맞는 사람, 혹은 그로부터 배척당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옴진리교에 들어간 겁니다.” 또 이런 말. “‘이런 세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해’라고 마음속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을 겁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아이들 중에요.” 그런 사람들이 강한 아사하라 쇼코 교주에게 이끌렸고, 그런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명확한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명확한 다수의 관점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살아 있는 생생한 재료다”는 하루키의 말은 소설가의 각색과 개입이 적은(그래도 <언더그라운드>보다는 많다) 이 책에서 빛을 발한다.
마지막으로, 한 신도가 옴진리교를 믿기 전, 오키나와의 유타(민간 영매로, 영적인 문제의 조언과 해결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에게서 들은 조언이 인상적이다.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게 수행이라는 거죠. 그게 진정으로 가장 큰 수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