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제 심사위원직은 상당히 꺼리는 편이고 최고 영화 선정 투표 같은 데는 섣불리 참여하지 않는다. 심사위원직을 맡지 않는 이유는 다른 심사위원들이 대개 영화의 영화적 질은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혹은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그들의 결정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최고 영화 선정 투표에 끼지 않는 이유는 투표하는 사람들의 게으름과 상상력 부족으로 언제나 같은 감독들의, 이미 잘 알려진 영화들만 선정 목록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두 가지 일을 주로 하며 경력을 쌓아온 내 동료들에겐 미안하지만, 왜 이런 일을 굳이 한단 말인가? 그러나 최근, 나는 슈팅 스타 2011의 심사위원도 하고 타이베이 금마장영화제의 중국어 최고 영화 100편 선정 투표에도 참여했다. 양쪽 다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슈팅 스타는 함부르크에 자리잡은 유럽영화진흥협회(EFP)가 주관하고 매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진행하는 연례행사로, “미래의 스타”로 꼽힌 열명의 배우가 언론과 대중에게 소개된다. 지난 12월 초 나는 유럽의 여배우, 감독, 프로듀서와 미국의 캐스팅 감독 등 다른 네명의 심사위원들과 함께 함부르크에서 오후 한나절 동안 유럽영화진흥협회 회원국들이 제출한 27명의 배우들에 대해 검토했다. 격렬한 논쟁이 오갈 것이라는 우리의 처음 예상과 달리 두 시간 반 만에 열명의 수상자를 결정했다. 우리는 최고의 배우가 누구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스타”를 찾고 있었고, 특별한 스타의 자질(아무리 엉망인 영화에서라도 돋보이는)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결정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열 번째 수상자를 결정할 때였다. 남자 심사위원들은 매혹적인 동유럽의 여자배우를, 여자 심사위원들은 잘생긴 서유럽 남자배우를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섹스 어필 역시 스타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배우들은 여러 가지 각기 다른 이유로 남녀 모두에게서 직업적으로 존경을 받는 법이다. 이번 경우엔, 전문성은 무슨! 인생이란 게 원래 이런 거 아니겠는가.
금마장영화제의 영화 선정 투표는 2011년 11월 영화제 때 중국어 영화를 기념하는 행사를 위한 것이다. 우리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영화제 관계자들은 1920년대부터 2010년까지 만들어진 600편이 넘는 중국어 영화 목록을 보냈지만 선정 위원들은 목록에 없는 영화들을 포함해 30편에 이르는 영화를 골랐다.
그 목록을 보면서 놀란 것은 중국영화 역사의 풍요로움이었다. 동아시아 영화산업에서 중국영화는 일본영화처럼 품격은 깊지 않지만 그 씨앗이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처럼 다른 역사를 지닌 여러 지역으로 퍼져서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함과 문화적 광범위함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영화처럼 일본영화는 지역적, 언어적 한계 속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 문화권”의 영화는, 영어권 영화처럼 동일한 뿌리를 가졌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다른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1930년대 상하이 영화를 1950년대 베이징 영화와 비교할 수 있을까? 1930년대 상하이 영화는 우익 정부의 검열 속에서, 1950년대 베이징 영화는 공산주의 이념하에서 만들어졌다. 또 어떻게 그 영화들을, 영국의 식민 통치하에서 중국 본토의 만다린어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광둥어로 만들어진 1960년대 홍콩영화와 비교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독창성과 영화를 만드는 솜씨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좀더 동질적인 사회들을 놓고 이런 비교를 한다면 더 수월하긴 할 거다. 그러나 이처럼 흥미롭고 도전적인 작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