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에서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제작 가능성이 영영 차단된 저주받은 작품’을 상상할 법하다. 그러나 웹사이트 blcklst.com에서 발표한 ‘2010년의 블랙리스트’ 명단은 좀 다르다. 총 290명의 할리우드 영화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올 한해 읽은 시나리오 중 꽤 괜찮았던 명단 10위 안에 들어가”지만, 아직 제작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관객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시나리오들을 모은 설문이다. 그러니까 ‘비운의’ 리스트라기보단 지금 시대 할리우드의 트렌드를 어렴풋하게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내에서 어떤 영화를 디벨롭하고 프로듀스하고 배급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취향을 볼 수 있는 스냅숏”(제작자 프랭클린 레오나드)이다.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역시 실화 혹은 실존인물에 대한 대중의 관음적 흥미다. 블랙리스트 1위를 차지한 작품도 <컬리지 리퍼블리컨>이다. ‘컬리지 리퍼블리컨(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의장 선거를 통해 이 시대 최고의 킹메이커로 손꼽히는 공화당 정치인 칼 로브의 뒤안길을 파헤친다. 2위는 <재키>다. 존 F. 케네디의 암살 직후 7일 동안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재키 케네디의 치열한 싸움을 다루고 있다. 8위 <아메리칸 불쉿>은 1980년대 의회에 침투했던 FBI의 언더커버 함정 수사를 바탕으로 했다. 9위 <아르고>는 1979년 이란 테헤란에서 벌어진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CIA와 할리우드가 손잡았던 실화를 다룬다. 미국 최대 규모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그늘을 다룬 40위 <머독>도 빼놓을 수 없다. ‘갈기갈기 찢는’ 호러물들도 꾸준히 호감받는 장르다. 어머니를 죽인 뱀파이어들을 멸절시키기 위한 링컨의 모험담을 그린 <에이브러햄 링컨: 뱀파이어 헌터>, 좀비 악당들에게서걸스카우트 단원들을 구출하는 보이스카우트의 모험담 <보이스카우트 vs 좀비> 등이 흥미를 끈다. 이 전체 명단은 blcklst.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