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의 추억들. 2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개봉 무렵 취재진에게 기념품으로 선사된 목도리는 슬리데린 기숙사 것이었다. 역시 기자의 이미지는 ‘말포이 친구’에 가까운가보다.
12월3일
“내 첫 영화 시사회에서 우리 아버지는….” 무슨 이야기 끝에 이 화제가 나왔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내용만은 잊고 싶지 않아 취기 속에서도 머릿속 백지에 꼭꼭 눌러 적었다. 변영주 감독의 아버님은 <낮은 목소리>의 시사를 보고 나오는 길에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 이렇게 답하셨단다. “저는, 서부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역시 다큐멘터리란 재미가 없는 거구나”라는 명쾌한 20자평을 딸에게 선사하셨다고 한다(왠지 부전여전인 것 같다는 소감은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경미 감독은, 단편영화로 평단의 주목을 받는 동안 한번도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다. 트로피를 받아들고 와도 “너는 과분한 인정을 받은 거니까, 우쭐하지 마라”는 냉정한 반응이 전부였다고 한다. 맏딸이 방심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더 무거우셨던 모양이다. 그 아버님이 첫 장편 <미쓰 홍당무> VIP 시사회에 오시던 날, 이경미 감독은 아버지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해 당황하고 말았다. 세월과 더불어 머리숱이 적어진 모습으로 내내 지내셨던 아버님이 그날 평생 처음으로 가발을 쓰고 극장에 오셨기 때문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로 입봉한 이해영 감독의 아버님도 줄곧 칭찬에 인색하셨다. 영화를 시작한 이래 “네가 무슨 영화를 한다고…”라는 투의 말씀이 가슴에 생채기를 긋기도 수차례였다. 마침내 데뷔작을 상영하는 자리에 부모님을 초청했을 때, 어머님은 “요즘 네 아버지가 화장실에 자주 가셔서 어려울지도 모르겠는데”라고 말끝을 흐리셨고 이해영 감독은 그저 서운했다. 아들의 첫 영화인데 그런 핑계라니. 감독님은 뒷날에야 그 무렵 부친이 치매 초기에 접어드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분은 시사회에 오셨다. 마침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VIP 시사회 특유의 예의바른 침묵이 흐르는 객석에서 딱 한명의 관객이 벌떡 일어나 힘찬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버지였다. 영사실에서 새어나오는 한 줄기 빛 속에 홀로 서 있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회상하는 이해영 감독의 목소리에는, 우리가 아주 가끔 ‘영원’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는 단단한 울림이 있었다. 깊은 우물로부터 끌어올려지는 두레박이 돌벽에 부딪쳐 내는 소리와도 같은.
12월5일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환상의 그대>(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를 보다. 종합소득세 신고하듯이 매년 규칙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우디 앨런이나, 세금 징수하듯 꼬박꼬박 챙겨 보는 팬들이나, 이젠 습관의 경지에 들어섰다.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는, 하도 규칙적으로 영화가 출고(?)되다보니 정색하고 전작에 비해 좋고 나쁘다고 평하는 일이 열없어지는 효과가 있다. 이런 식이라면 연표를 적은 두루마리를 펴놓고, ‘좋은 빈티지’와 ‘나쁜 빈티지’를 논하는 편이 어울릴 것 같다.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끝내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가엾은 배우. 소음과 광기가 가득하나 결국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바보가 지어낸 이야기.” <맥베스> 5막5장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환상의 그대>는 이야기의 총합이 다시 0으로, 아니 엄밀히 셈하면 감가상각비를 제한 마이너스로 끝나는 영화다. 삶에 실망한 인물들은 ‘환상의 그대’를 그리며 제2의 커리어, 두 번째 청춘, 내생, 새로운 사랑(featuring 비아그라)을 꿈꾸지만 우디 앨런이 보기에 아무리 난리를 쳐도 우리가 확실히 만날 ‘그’(tall dark stranger)는 다름 아닌 죽음이다. 감독이 노장이라는 사실에 기댄 쉬운 짐작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최근 우디 앨런 영화의 인물들은 관찰보다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낸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는 인상이다.
마술쇼, 오페라 등이 자주 등장하는 우디 앨런 영화에는 공연이 끝나고 관람을 마친 극중 인물들- 주로 커플- 이 집으로 돌아가는 다음 신까지, 앞선 공연장면의 음악이 흘러넘치는 경우가 많다. 진부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방식이지만 좀처럼 질리지 않는 연결이다. 질리기는커녕 볼 때마다 마음의 속살이 연해진다. 라이브 공연을 보고 난 직후 몸 안에 음악과 그것이 자아낸 감정이 한동안 괴어 있는 경험이 그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일 거다. 우디 앨런 영화가 예외없이 제공하는 다른 즐거움 하나. 그의 인물들은 진득이 앉아서 논쟁하지 않는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실내에서 부부나 가족들이 흥분해 이 방 저 방을 쏘다니며 말다툼을 벌이는 광경을 앨런만큼 훌륭하게 쓰고 연출하는 작가는 달리 없다. 저런 집안 싸움이라면 언제나 구경할 용의가 있다.
12월6일
1970년대에 이미 만신전에 올랐던 감독들이 3D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는 귀가 솔깃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평론가 마크 커모드가, 3D영화 <휴고 카바레>를 촬영 중인 마틴 스코시즈를 인터뷰한 <옵저버> 기사를 뒤늦게 읽었다. <BBC5>에서 영화를 평하고 포드캐스트로도 인기가 높은 커모드는 ‘영화평론계의 스코시즈’라고 해도 손색없는 속사포 화법의 소유자인데, 두 사람이 만났으니 장관을 연출했을 법하다. 파리 기차역에서 숨어사는 1920년대 소년의 이야기를 영국 셰퍼튼 스튜디오에서 찍고 있는 스코시즈는 예상했던 대로 3D에 대한 의욕과 열의로 들떠 있다. “모든 숏이 시네마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떤 그림으로 스토리를 전달할 것인지 새롭게 고민한다. (3D를) 눈속임수로 쓰거나 카메라 앞에서 연방 창을 던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숏 하나, 카메라와 크레인의 움직임 하나를 디자인할 때마다 이건 마치 루빅스 큐브다.” 한편, 오스카 시즌이 임박함에 따라 통상 시사용 DVD로 영화를 관람했던 아카데미 회원들이 3D영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 부문을 신설하는 게 옳은지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는 뉴스도 들려오고 있다. 그 안건은 퍼포먼스 캡처를 포함한 디지털 배우들의 연기상 부문과 묶어 함께 논의하는 것이 어떨지.
12월9일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을 보는 심정은, 올림픽 육상 장거리 종목에서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종이 울리는 순간의 기분과 비슷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이나 <스타워즈>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레모니 스니켓> 시리즈처럼 중간에 발목이 접질리지도 않고 여기까지 온 건 영화 한편을 충분히 먹여살릴 만한 거대한 원작 팬덤과 막강한 원저자에 대한 일관된 충성의 결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화적으로 가장 짜릿했던 에피소드는 원작과 그나마 자유로운 유희를 벌인 알폰소 쿠아론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였으니, 이 프랜차이즈는 ‘책 읽어주는 영화’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기록될 전망이다. 아마 이 프로젝트에 생기와 자발성, 우연의 마법이 조금이라도 깃든 부분이 있다면 영화와 더불어 자란 세 주연배우일 것이다. 하지만 해리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연작의 연장 가능성에 대해 “해리 포터로 10년을 산 걸로 족하다”고 화들짝 놀랐다. 공감하면서도 슬그머니 드는 생각. 그럼 ‘해리 포터의 친구’ 로 10년을 산 배우는 오죽하겠는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수업과 게임이 학사일정대로 반복되는 기숙사물로서 사랑했던 관객이라면 움직이는 영화로서가 아니라 잘 꾸며진 타블로(tableau)의 연쇄로 즐겼던 관객이라면, 주인공들이 호그와트를 떠나 광야를 헤매는 <죽음의 성물1>은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눈여겨보아야 할, <죽음의 성물1>에 숨겨진 ‘성물’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극중 동화 <세 형제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자 애니메이션 시퀀스 2. 볼드모트 일파가 장악한 마법부 청사의 파시스트 양식 건축 디자인. 3. 존 윌리엄스를 대신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색, 계> <예언자>)의 음악 3. 헬레나 본햄 카터가 분한 벨라트릭스 레스트랭. 5. 절망에 빠진 소녀에게 절망에 빠진 소년이 춤을 청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고요하고 ‘이상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