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청년 발렌틴(제임스 맥어보이)은 톨스토이의 새 비서로 뽑힌다. 톨스토이의 수제자 블라디미르(폴 지아매티)는 발렌틴에게 소피아(헬렌 미렌)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라고 명령한다.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는 작품의 저작권을 사회에 양도하겠다는 남편과 블라디미르가 못마땅하다. 블라디미르는 톨스토이의 딸 샤샤(앤 마리 더프)와 함께 스승의 새 유언장을 작성하려 하고, 이를 알아차린 소피아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한편, 아내의 집착을 더이상 참을 수 없는 톨스토이는 훌쩍 집을 떠난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는 웃음을 선사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톨스토이는 사유재산 폐지를 주장하지만 하녀를 부리고 산다. 톨스토이 추종자들은 ‘모기를 잡아 죽이는’ 톨스토이에게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진정한 톨스토이주의’를 훈수한다. 톨스토이주의자라면 섹스를 멀리해야 한다고 믿는 발렌틴에게 톨스토이가 들려주는 ‘고언’은 젊은 시절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여자와 하루에 섹스를 두번씩 했다는 에피소드다. 발렌틴은 톨스토이 공동체에서 마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순진한 감상주의자’라는 블라디미르의 질책 앞에서 모스크바로 떠나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못한다. 한편, 소피아에게 인류를 위한 박애주의자 톨스토이는 가족의 내일조차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가장일 뿐이다.
위대한 이들의 알려지지 않은 삶은 언제나 흥밋거리다. 후대의 범인(凡人)들은 고고하고 견고한 이상에 가려진 ‘그들’의 기벽과 습성을 엿보려 한다. 들추는 것만으로 양이 차지 않으면 ‘그들’이 말한 대로 살았는지 짓궂게 되묻는다. 자유와 평등을 신념으로 간직했던 톨스토이는 무엇을 말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그렇다고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톨스토이의 삶이 위선이라고 까발리는 영화는 아니다. 외려 모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이야말로 톨스토이의 사상이라고 전한다. 고독이야말로 안식의 유일한 조건이라며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톨스토이가 죽음 앞에서 불완전한 그들 모두를 그리워하는 장면은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전달한다.
원작 소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에 비하면 캐릭터들의 다채로운 면모가 지나치게 압축됐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현현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뒤 머리를 풀어헤친 채 절규하는 헬렌 미렌의 연기가 아쉬움을 충분히 메운다. 한국에선 제임스 맥어보이가 크레딧의 첫머리에 등장하지만, 주인공이라기보다 100년 전 세상을 뜬 톨스토이에게 관객을 인도하는 충실한 가이드 정도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