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무려 10년의 세월이다. 21세기 판타지 열풍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가 결국 그 최종장의 막을 올렸다. 원작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시리즈 중에서도 독특하고 이질적이다. 단지 시리즈의 마지막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리의 학교생활 1년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주요 플롯으로 하여 반복되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이하 <죽음의 성물1>)은 덤블도어의 죽음 이후 호그와트를 벗어나 새로운 무대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성년이 되며 해리를 지켜주던 수호 마법은 사라지고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볼드모트 영혼의 조각이 보관된 호크룩스를 찾아 파괴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이미 볼드모트에 의해 장악된 마법세계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을 피해 숨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다. 세 사람에게 남겨진 덤블도어의 유품은 수수께끼처럼 그저 막막하고, 아무런 단서도 없이 떠난 그들의 모험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가득하다. 계속되는 시련의 나날 속에 세 친구는 끊임없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숙명에 대한 의지를 시험받는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이후 시리즈 중 가장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이번 작품은 기존의 화사했던 판타지 모험극과 달리 선택받은 소년의 운명과 불안을 묵직하게 담아낸다. 급변한 작품의 분위기만큼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리가 기억하던 앳되고 귀여운 소년 해리 대신 어느새 청년 해리 포터‘군’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오랜 도피생활로 구레나룻까지 거뭇거뭇해진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낯선 얼굴은 새삼 이 시리즈가 장장 10년이나 지나왔음을 환기시킨다. 론과 헤르미온느의 변화 역시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만큼 낯설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무거워진 정서에 매몰되지 않도록 배치된 코믹한 장면들은 유난히 돋보이면서도 과하지 않아 시리즈 최고의 리듬감과 균형감을 이룬다.
성공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두 가지 상반된 잣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마련이다. <죽음의 성물1>은 이 불가능한 작업의 성공을 위해 <반지의 제왕>처럼 일단 물리적인 재현시간을 늘리는 선택을 감행했다. 원작을 ‘어떻게’ 인상적으로 재현할 것인지에 집중하다보니 여전히 ‘원작을 위한’ 영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리즈의 방대한 세계관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난감함을 감안하더라도 비약적으로 늘어난 러닝타임의 넉넉함은 대부분 원작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전작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과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에서 원작의 지나친 압축과 변형으로 팬들의 원성을 샀던 데이비드 예이츠 감독이 심기일전하여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았기에 이러한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거기에 원작자인 J. K. 롤링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이번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제대로 된 표현’이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다. 몇몇 순간의 심리적 표현만 간소화했을 뿐 전작들에 비해 생략되거나 재배치된 사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야심 혹은 욕심이 엿보인다.
원작의 짙은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사실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벗어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성물1>은 전작에 비해 균형감있게 잘 만들어진 영화다. 원작 팬이라면 충실한 재현에 만족할 것이고, 처음 보는 관객이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불친절하진 않다. 나이를 먹은 만큼 주연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이제 성숙함이 묻어나며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만족스럽다. 심지어 디지털 배우들(도비와 크리처)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를 장식한다. 유행에 맞춰 무리하게 3D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도 칭찬할 만하다(<죽음의 성물2>는 3D로 제작된다).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을지는 내년 여름 <죽음의 성물2>가 나와 봐야 알 일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내년에 개봉할 <죽음의 성물2>를 보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