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척척박사가 따로 없다. <쩨쩨한 로맨스>에서 최강희가 연기하는 다림은 “모르면서 아는 척, 안 해봤으면서 해본 척”하는 섹스칼럼니스트이다. 연애와 섹스를 글로 배운 까닭이 큰 듯한데, 정작 본인은 이를 크게 괘념치 않는다. 아니, 오히려 뻔뻔하리만치 당당하다. 믿는 구석 하나 없는 주제에 온갖 ‘척’은 다 하는 이 여자, 이상하게도 전혀 얄밉지 않다. 그는 함께 일하는 만화가 정배(이선균)에게 큰소리치다가도 불리하다 싶을 때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보거나, 누나 알기를 우습게 아는 잘난 동생 앞에서는 대꾸 한마디 제대로 못한다. 때로는 겁없이 달려들다가도, 또 때로는 “깨갱”거리며 뒷걸음치는 다림의 행동은 마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다.

극중 다림은 “에너지가 항상‘업’되어 있는 상태”다. 다소 거친 성격이 특징인 <애자>의 애자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지점이다. “<애자>를 통해 어렵고 힘든 작업일수록 성취감이 크다는 것”을 깨달은 최강희에게 다림은 생소한 캐릭터였다.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 중 (연기하기가) 가장 어려운 역할을 선택한다. 그간 맡은 역할을 통해 ‘귀엽다’, ‘청순하다’, ‘섹시하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스스로 ‘귀여운 척’하는 역할을 해본 적은 없다. 다림은 실제 내 모습과 전혀 달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슛보다 리허설이, 리허설보다 대본 리딩이, 대본 리딩보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가 더 좋다”는 최강희는 출연 결정을 내리자마자 캐릭터의 주요 특징을 즉각적으로 떠올렸다. “하룻강아지처럼 보이기 위해 꽁지머리로 해달라”는 감독의 주문이나 ‘절친’ 류현경의 실제 성격도 물론 참고, 반영했지만 최강희에게 다림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문은 ‘미니스커트’였다. “푼수 같은 모습과 여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극의 대부분 장면에서 다림은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ADR(후시녹음)을 마칠 때까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그 정도로 최강희는 다림이 되었다. 감독과 배우 미팅 첫날, 미니스커트를 입은 최강희는 사람들과 함께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아이돌 그룹 f(x)의 노래를 불렀다. 현장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예전과 확연히 다른 행동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것 같았다. 그게 다림인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다림은 정배와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고, 자신을 차차 알아간다. 엄마와의 따뜻하고 애절한 사랑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애자(<애자>), 일과 사랑 그리고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31살의 미혼 여성 은수(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등 전작에서 최강희는 항상 성장했다. 스크린 속의 최강희가 시간을 무색하리만치 나이를 먹지 않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단순히 그가 ‘동안’이라서가, 세간에서 말하는 ‘4차원 캐릭터’라서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신인 감독님들과 작업했다. 그들은 매번 나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냈다. 어쩌면 극중에서 항상 성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서 스크린 속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의 다음 선택 역시 연기에 대한 현재의 고민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다. ‘최강희는 캐릭터 배우다’라는 말이 있잖나. 그걸 덜어내고 싶다. 원톱도 원하지 않는다. 드라마로 치면 적당한 역할을 하고 싶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 불러주면 하겠습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