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은 사람들이 “표지가 좀 그렇긴 하지만…”이라고 꼭 토를 단 뒤 “정말 재밌다”는 말로 마무리하는 <밀레니엄> 3부작을 일 때문에 다시 읽다가 이번에도 남자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때문에 웃고 말았다. 중년의 나이, 한번 이혼 경력 있음, 16살 난 딸 있음, 결혼 전부터 관계를 가져온 유부녀와 여전한 애인 관계, 직업은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경제기자, 정의감 넘쳐흐름. 외모에 대한 상찬이 등장하지는 않는데 여자들은 그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기꺼이 옷을 벗고 안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같이 잘 것 같았다는 등. 연상의 유부녀부터 상류층 유부녀, 딸 나이뻘의 여자까지. 이 남자, 매력적이긴 하다. 사건의 핵심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통찰력과 반듯한 정의감, 책임감. 그렇다고는 해도 난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가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거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야 마는 것이다. 여자 작가가 쓴 미스터리나 스릴러 소설에서 여자주인공이 어땠더라? 작가가 자신과 동성인 주인공에게 이입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 적지 않다는데, 여자 작가의 여자주인공은 딱히 ‘잘나간다’는 느낌은 없다. 일을 잘해도 어디선가는 제대로 실패하고 있다. 그것을 불행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여튼 그렇다. 그녀들에게서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인상은 ‘연민과 공감’이다.
뭐 이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은 말을 계속하기보다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남자주인공이 재미있다는 말을 계속해보도록 하자. 섹스를 한 다음 꼭 여자 입으로 “당신, 침대에서 괜찮은데?”류의 말을 받아낸다(남자주인공이 묻지는 않는데 상대 여자가 그런 유의 말을 하는 걸 보면 남자 작가가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곤 한다). 평생 성적으로 분방하게 살지 않은 여자가 “당신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끌어내주었어”라며 안겨온다. 뭐라는 건지, 원….
스릴러물의 남자주인공들이 싸움 잘하고 머리 좋은 것으로 부족해 꼭 여러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으로 우월함을 증명할 때,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깨알같이 근거를 따져 자신감 결핍인 것보다는 근거없이 자신만만한 게 본인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나 견디기 편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이 아이거 빙벽만큼 대단한 <아이거 빙벽>의 남자는, 뭐랄까, 차원이 다르다. “모든 점을 고려해볼 때 자연의 섭리는 정말 변덕스럽소. 난 섹스를 할 때 상대 여성을 배려해본 적이 한번도 없소. 난 거의 느끼지 못하니까. 그래서 사정하는 시점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지. 하지만 당신은… 왠지 배려하고 싶고 또 중요하게 생각되고… 아니, 당신은 이미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난 동부에서 제일 빠른 토끼가 되어버린 거요. 정말 자연의 섭리는 변덕스럽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