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쓰야 괴담은 일본에선 가장 유명한 괴담 중 하나란다. 데릴사위로 들어간 남자가 부인을 쫓아내 부인이 귀신 된다는 배신남 스토리. 하지만 교고쿠 나쓰히코의 손을 거친 <웃는 이에몬>에선 배신남도 귀신도 필요없다. 순백의 남녀와 암울한 시대만 있으면 된다.
낭인 이에몬은 무사랍시고 허영을 부리기 싫어 가난한 목수로 사는 고고한 남자다. 그런 그에게 혼담이 들어오니, 보초병을 직분으로 삼는 초라한 무사 가문의 딸 이와가 상대다. 이와는 미인이었으나 천연두를 앓은 뒤로 추한 몰골로 변했건만 쉬운 동정보단 차라리 경멸이 낫다는 자존심 센 여자다. 서로 닮은 이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문제는 이들이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른다는 것. 이와는 못생긴 자신을 이에몬이 무시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다. 이에몬은 그녀의 속사정을 모른 채 끙끙 앓다 성질만 버럭 내곤 한다. 이와는 괴로워하는 이에몬을 보며 힘들어하면서도 못된 성질을 억누르지 못한다. 위악은 결벽적인 사람이 자신의 작은 흠집 하나 참지 못해 악하게 구는 것인데, 이들에게 딱 맞는 말이다. 요즘으로 치면 애정과 관심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두려워 오히려 싫다며 상대를 밀쳐내거나 위악적으로 괴롭히는 사춘기의 열병 같은 로맨스다.
역사적 배경인 겐로쿠 시대는 <웃는 이에몬>에서 사람들을 짓누르는 어두운 시절로 그려진다. 다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누이의 자살로 미쳐가는 사내, 삶의 무의미함을 이기기 위해 악행을 벌이는 니힐리스트. 이런 시대에서 이와와 이에몬이 잘될 리 없다. 권력자 이토 기헤이가 꾸민 음모와 이들의 사랑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비극을 향해 굴러간다. 원작이 비극이니 결론은 정해져 있으나 그 방법이 판이한 것. 캐릭터들이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몰락하는 과정이 탐미적으로 그려지니 고딕 로맨스 팬들은 환호할 것이다. 미스터리 팬은 이토가 저지른 일련의 악행들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따라간다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