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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무] 동화처럼, 만화적 인물로 받아들여달라
강병진 사진 오계옥 2010-12-03

<워리어스 웨이>의 이승무 감독

<워리어스 웨이>는 시나리오부터 개봉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이 걸린 프로젝트다. 그 기간 동안 영화는 규모가 작은 “선댄스용” 액션영화에서 예산이 20배 늘어난 판타지 액션영화로 몸집을 불렸고, ‘사막전사’ 또는 ‘런드리 워리어’로 불리던 제목은 ‘워리어스 웨이’로 바뀌었다. 감독 데뷔작으로 <워리어스 웨이>를 준비해온 이승무 감독에게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들 법한 유혈낭자극이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피가 싫어지더라. 원래 성질이 급한 편이었는데, <워리어스 웨이>를 만들면서 내 성질대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더 착해진 것 같다.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웃음)” 지난 11월22일, 첫 공개된 <워리어스 웨이>는 전형적이면서도 단순한 서사에 서부극과 무협영화 등 수많은 영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결과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 동안 이승무 감독이 고민한 건 자신의 취향과 대중의 시선이 만나는 접점을 찾는 일이었을 듯 보였다. 무엇이 만족스럽고, 또 무엇이 아쉬운지 물었다.

-<워리어스 웨이>는 제작기간 동안 뉴스를 통해 꾸준히 언급된 프로젝트였다. 촬영이 끝난 건 정확히 언제였나. =2008년 2월 말이었다. 이후 후반작업을 하고 완전한 결과물이 나온 건 2009년 1월이었다. <워리어스 웨이>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니라서 개봉날짜가 잡혀 있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판권을 팔았고 다시 영화를 다듬으면서 이제야 개봉한 거다. 2007년 당시 제작에 들어갈 때, 2008년 여름 개봉이라는 추측기사가 나왔는데 사실상 개봉이 늦춰졌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워리어스 웨이>를 처음 구상했을 때는 어떤 구성이었나.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였다. 당시 동네에 있는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들이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다. 친해진 뒤 알고보니 그중에는 한국에서 대학총장을 지내고 온 분도 있더라. 그들의 사연을 통해 미국 내 한국 사람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뒤집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탁소 철학자’, 이런 건 별로 재미없지 않겠나. 그래서 생각한 게 무술의 고수였다. 그때는 <와호장룡>이나 <매트릭스>가 나오기 전이었는데, 나 또한 아시아 액션에 미국적인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형태를 생각했었다.

-첫 구상도 서부시대가 배경이었나. =1970년대 서부에 있을 법한 가난한 동네였다. 그때 쓴 시나리오가 느낌상 서부극처럼 보였다면 지금의 결과물은 더 완전한 서부극에 가까울 거다. 평소에 대놓고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당시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구로사와 아키라와 타란티노가 만난 영화라고 했었다. 6년 뒤, <킬 빌 Vol.1>이 나왔는데 큰 충격이었다. 난 이제 끝났구나 싶더라. <킬 빌>과 다른 영화를 만들려고 하면서 원래 구상과 멀어진 부분도 있다.

-<워리어스 웨이>는 굳이 시대를 거론할 필요가 없는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면서 염두에 둔 시대는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1880년대 정도일 거다. 하지만 사실 그때는 영화에 나오는 오페라 LP도 없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염두에 둔 시대는 아니고 미술자료를 모을 때 생각한 시대다. 어제 나온 평들을 보면서 고민이 됐다. <워리어스 웨이>는 극중 제프리 러시의 내레이션처럼 옛날의 동화를 이야기하는 거고 만화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인데,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서사로 보는 것 같더라.

-해외 파트너가 붙고 규모가 커지면서 아무래도 처음 구상했던 것들을 비워내는 쪽으로 다듬었을 것 같다. =처음부터 몇 백만달러, 몇 천만달러 영화든 간에 내가 보고 싶고 다른 이가 만들지 않는 영화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어서 나섰기 때문에 그 안에서 유연해지자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좀 알아서 기는 스타일이다. (웃음) 줏대가 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다르게 변화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워리어스 웨이>의 경우, 기관 단총과 칼이 싸우는 상황을 허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봤다. 이른바 타란티노처럼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식으로 가거나, 별도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자의 방식을 생각했다. 그러다 사이즈가 커졌고, 나도 그런 게 진력이 났고, <킬 빌>의 이미테이션이 되기는 싫었다. 또 대중적으로 옮겨야 펀딩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대중에게 다가갔다고 보는데, 여전히 취향이 강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워리어스 웨이>에 담긴 취향이 이제 와서 독특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많이 담겨 있다. =<워리어스 웨이>는 창작이라기보다 재조립의 영화다.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면 못할 건 없었을 거다. 일부러 서부영화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져왔다. 내가 본 영화들, 좋아하는 영화들을 한꺼번에 넣으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했다. 영화 전체가 레퍼런스투성이다. 사실은 타르코프스키의 레퍼런스도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느 장면인지 궁금할 텐데, 김우형 촬영감독과 이야기할 때 이 영화의 모래들이 타르코프스키 영화 속의 물처럼 묘사됐으면 했다. 알래스카에서 집이 불타는 장면은 아예 CG를 만드는 팀에게 <희생>의 클립을 줬다. 알았다고 하고는, 결국 그렇게 만들더라.

-영화의 액션은 배우의 무술연기보다 그걸 담는 카메라의 연기가 중요해 보였다. =맞다. 흔히 보는 칼싸움이나 ‘다찌마와리’가 아니라 기술이 결합된 액션을 해보려 했다. 또 하나의 컨셉은 감정이 많이 들어간 액션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액션을 구현하려 했다. 어제 만난 동료 감독들은 인물이 싸울 때 감정이 더 보였으면 했다고 하던데, 나는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축구경기를 예로 들면 자기 편이 경기를 하면 시간이 잘 가지 않나. 우리 편에 동화되는 건데, 이게 할리우드영화의 관습이다. 그런데 가끔 나랑 아무 상관없는 영국의 축구 경기를 보면 그때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자기 편이 있을 때 공이 어디로 향하는지만 보이는 것과 다른 상황이다.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를 보면 죽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을 바꿔도 상관없는 액션을 만들고 있는데, 그런 전략을 생각했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만….

-왜 후회하나. =생각보다 충격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동화의 문제가 지적되니까. 나는 그런 비판이 아니라 네가 생각한 만큼 액션이 아름답지 않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페라를 예로 들면 줄거리가 음악 이면에 있지 않나. 음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예 줄거리를 단순화하는 거다. <워리어스 웨이> 또한 원형적인 이야기를 깔아놓고 영화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는 영화다. 그런데 못 만든 내러티브 영화 혹은 감정을 못 따라가는 영화로 보이는 게 안타깝다.

-감정선과 별개로 클라이맥스 액션신까지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려는 장치들을 고민한 듯 보였다. 이를테면 초반부는 아기의 표정이, 중반부에는 린의 캐릭터가 영화를 따라가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배치한 게 맞다. 할리우드영화의 스피드나 문법으로 똑같이 할 거면 내가 안 해도 되는 게 아닌가 싶더라. 기존의 액션영화와 달리 비어 있는 부분이 많은데, 이때는 린의 복수극이나 어린아이 같은 관심의 추를 주고 끌어가려 했다. 배우의 얼굴과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배경을 가지고 심리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게 목표였다. 잘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동건이 연기한 주인공 ‘전사’는 영화 속 대사처럼 ‘포커페이스’인 인물이다. 이 남자가 성격을 드러내는 건 죽은 아버지를 이야기할 때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린과의 관계에서도 어떤 입장인지 애매했다. =그렇게 봤다면 내가 잘 못한 거다. 다른 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나와 장동건이 잘했다고 생각한 게 장동건의 연기였다. 자세히 보면 전사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한다. 개인적으로 오버액팅을 싫어한다. 더스틴 호프먼보다는 리 마빈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끌리는 쪽이다. 이스트우드는 <석양의 무법자>부터 <그랜 토리노>까지 50년 동안 표정이 한 가지밖에 없지만, 그 안에 감정이 다 담겨 있다. <워리어스 웨이>에서도 그런 걸 해보고 싶었다. 나는 다 담겨 있다고 판단했고 동건씨는 그에 맞춰서 해준 건데, 역시 평들도 그렇게 나오더라. 조금 더 갔어야 했나 싶다.

-리 마빈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와 비교하기가 좀 어렵다. 그들의 표정은 영화의 풍경과 상황 속에서 함께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워리어스 웨이>는 애초에 이야기와 감정을 비우고 간 영화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은 눈에 보이는 CG다. =방금 말한 그런 부분을 그린 스크린을 통해 구현해보고 싶었다. CG를 통해 단순히 예쁜 걸 그리는 게 아니라 인물에게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풍경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왠지 나의 쓸데없는 야심이었던 것 같다. 내가 CG에 대해 영화학도 같은 나이브한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지금 와서 보면 뭔가를 더 넣어야 했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걸 구상 중인가. =갖고 있는 아이템 중에는 액션도 있고, 애니메이션, 작은 드라마도 있다. 그들이 모두 글로벌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쪽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전설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어떨까, 조지 클루니가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이런 쪽으로 머리가 움직인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합작 전문 감독이고픈 생각은 없다. 몇년째 고민하고 있는 건 감독의 자의식과 관객의 관계다. 다른 한국영화 감독,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들의 불일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장르영화가 감독의 자의식 때문에 새롭다고 하지만, 그 때문에 장르가 깨지고 그래서 일반 관객과 만날 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나도 같은 결과물을 만든 건 아닌가 싶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생들에게도 주로 그런 부분을 강조하는 편인가. =그렇다. 최근 3년간 학생들이 귀가 따갑게 들은 이야기일 거다. 물론 나도 감독의 자의식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학생영화의 특권이자 매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관객과 만나는 통로를 찾지 못한 학생들을 많이 봤다. 뛰어난 제자 중에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배고픈 예술가가 되겠다는 학생도 별로 없었다. 충무로에 들어와서 도태되다가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학생의 조그만 재주를 칭찬해주는 선생도 있지만, 나는 너의 그 장점이 장편영화 감독에서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냐는 식으로 비판하는 편이다. 그래서 인기가 별로 없다.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사막전사’, ‘런드리 워리어’, 그리고 ‘워리어스 웨이’ 중 어떤 제목이 마음에 드나. =사막전사와 런드리 워리어는 초고부터 함께해온 제목이다. 영문으로 런드리 워리어를 쓰고, 아래 한문으로 사막전사, 그 아래 싸이더스의 사명이 쓰여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제목이 선댄스영화나 성룡의 액션영화, 코미디영화 같다고 했다. 사실 ‘워리어스 웨이’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제목이다. 결국 갑론을박 끝에 모든 사람들의 세 번째 선택이었던 ‘워리어스 웨이’로 합의했다. 처음에는 왠지 게으르게 지은 제목 같았는데, 지금은 또 괜찮은 것 같다. 장동건은 지금도 런드리 워리어로 갈 수 없냐고 한다. 사실 나도 런드리 워리어로 너무 오랫동안 작업을 해서 기자회견할 때 실수를 하곤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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