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백두대간이 광화문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손을 떼고 케이블TV 방송 사업을 하는 티캐스트가 급하게 극장을 인수했을 때, 오랫동안 국내 영화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아온 극장 씨네큐브의 정체성을 걱정했던 건 비단 <씨네21>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수 이후 그간의 과정을 보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 씨네큐브는 10주년을 맞아 기존의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다지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정중한 말씨로, 후반에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티캐스트의 강신웅 대표는 머뭇거리지 않고 비전을 약속했다. 당신이 알고 있고 바라고 있는 이 극장의 취향과 품격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분 좋은 약속을 듣고 왔다.
-그동안 영상 사업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얼마 전에는 티캐스트 총괄상무에서 대표이사가 됐고. =전반적으로 관련된 업무에 대한 총괄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총괄상무는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지금은 그 대표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큰 차이는 없다. 뭐 차이가 있다면 봉급이 조금 올랐다는 거? (웃음)
-극장 사업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다른 케이블 사업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나. =오래 전 삼성영상사업단에 있었다. 방송 사업 분야, 수입이나 제작 분야에 근접했던 편이라 극장 사업도 아주 낯설지는 않다. 영화를 선정해서 일정한 회차에 맞춰 넣는 것이 방송편성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처음 할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도 우려를 많이 했고.
-백두대간이 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극장의 정체성을 의심한 건 사실이다. =그랬을 거다. 초반에는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문까지 났으니까. 급하게 맡다보니 당황스러웠고 고충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화됐다. 예술영화를 위해서 멀리에서 우리 극장까지 오는 관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씨네큐브라는 브랜드가 고정 관객을 많이 갖고 있고 다시 정상화되는 데 그분들이 큰 기여를 했다. 그분들에게 품격을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이 극장의 포지션은 누군가가 약속없이 아무 이유없이 와서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냥 와서 보면 여기는 항상 좋은 영화를 할 거다, 하는 기대로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를 하는 곳이 아니라 누적, 반복 관람이 가능한 그런 영화들을 선정하고 상영할 생각이다. 좋은 영화로 감동을 주고 싶다
-씨네큐브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일종의 상징적 공간이다. 티캐스트가 장기적으로 이 극장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이다. 이 건물이 여기 있는 이상 계속 있을 거다. 건물이 없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10년 동안 운영되어왔던 방향이 소중하고 그 방향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애정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도 사업성,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있다. 마니아 영화로만 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상업영화를 극장에 상영하면서 정체성을 애매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한다고 해야 할까. 매출로 따져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전체 사업에서 아주 작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브랜드와 극장이 전부 예뻐 보인다. 돈 벌자고 달려들면 의미가 없다. 씨네큐브라는 존재감이 큰 거다. 우리의 영화 취향과 방향에 맞게 구체적으로 수입, 배급을 할 거다. 언젠가는 거기에 맞춰 자체적으로 제작도 할 수 있겠지만, 영화시장에 기웃거린다는 말을 듣는 게 걱정스러워서 그런 말은 잘 안 하는 편이고.
-연내 극장 개·보수를 한다고 들었다. =1관과 2관을 번갈아 보수할 생각이다. 공사를 하더라도 극장이 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관을 번갈아가며 공사한다. 의자를 바꾼다. 뭐, 오감형 4D, 그런 의자는 아니고(웃음) 깨끗한 의자로 바뀌는 거다. 우리 극장의 관객은 책을 좋아하고 극장 로비를 둘러보는 분도 많으니 그런 분들을 위한 공간도 많이 늘리려고 하고.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는지 미리 보여드리기 위해 텔레비전 모니터도 설치할 생각이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홈페이지까지는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는데, 영화 교류의 장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준비를 갖추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물론 티캐스트 운영 1년 반을 기념해서 하는 게 아니다. 씨네큐브 10주년을 기념해서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나. (웃음) =잡식성이다. 마틴 스코시즈를 특별히 좋아한다.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라고 <HBO>에서 마틴 스코시즈가 제작한 방송용 드라마가 있다. 미국에서는 잘되는데 갖고 오면 잘 안되는 것들이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다. 마틴 스코시즈, 그 양반의 개인적인 연출 특성상 이 드라마도 시청률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 같진 않지만(웃음) 그래도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내년 중에 방영될 거다. 미국의 초기 이민자에 대한 것이다. 되게 비싸게 샀다. 이 드라마가 그 유명한 마틴 스코시즈가 만든 건데 그를 알고 있나, 칸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묻기에, 그런 얘기 하지 마라, 잘 안다, 그런 말 하면 나 화난다, 그렇게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