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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논쟁은 집어치우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2010-12-02

위기의 영진위를 바라보는 9명의 영화인들

공통질문 1. 지난 조희문 위원장 체제 영진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2.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이 현재 국회 예산 심의 중이다. 이것이 그대로 진행되었을 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3. 영진위 정상화 방안에 대해, 새로운 영진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광희 (영화사 봄 대표)

1. 영진위 위원장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잘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조희문을 비롯한 이 정부의 인사들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가 아닌 ‘(영진위 위원장) 자리에 가는 것’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위원장이 조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을 대할 때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2. 영화산업이 잘 기능하기 위해 영화를 진흥하는 게 영진위가 해야 할 일이다. 영화라는 매체는 예술적인 측면을 버릴 수 없다. 영화가 예술적인 긴장감을 가질 때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현재 한국시장은 예술영화가 버티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면 영진위가 시장에서 경쟁력에 한계가 있는 부분을 지원해야 하는데, 지금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은 그 모든 것을 등한시하고 있다.

3. (신임 위원장으로) 누굴 뽑든지 간에 합리적이고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영진위 위원장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신임 위원장은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영화 정책들이 이 정부의 코드와 맞지 않더라도 영화진흥에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1.무능력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정책 어젠다도, 영화를 진흥할 만한 콘텐츠도 없었다. 강한섭 전 위원장의 경우, ‘한국영화 위기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등과 같은 최소한의 고민이 있었지만 조희문 체제는 그런 고민조차 없었다.

2. 현재 심의 중인 예산안은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왔다. 가령, 정부는 ‘환율 위기’라는 명목하에 4대강 등 국토 개발 관련사업에 대한 예산은 늘리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것은 줄이고 있다. 또 국고에서 줄인 예산을 영화발전기금에서 충당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독립영화제작지원금은 삭감하고, 스탭임금비 지원이나 후반작업지원 방식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현장 영화인들에게 절실한 건 당장 기획·헌팅·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진행 경비이기 때문이다.

3. 영진위가 신구 및 좌우 갈등에 휩쓸리지 말고, 현재 한국영화산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 현장의 목소리에 진정 귀기울였으면 한다.

육상효 (영화감독·<달마야, 서울가자> <방가? 방가!>)

1. 영진위가 지금까지 오면서 영화인과 함께했던 시스템이 있지 않나. 독립영화제작지원금이라든지 시네마테크 지원금 같은 것들을 조희문 위원장이 한꺼번에 바꾸려고 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현 정권은 한국영화 시스템을 공적으로 이끄는 영진위를 자신의 속성대로 바꾸려고 했던 것 같은데, 글쎄… 영화는 정치처럼 그렇게 바뀔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2. 가장 우려되는 건 제작지원금이 축소 또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영진위의 제작지원금 4억원이 없었다면 <방가? 방가!>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예술적인 형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이 필요하다.

3. 현장영화인과 영진위 사이에 커다란 벽이 생긴 것 같다. 이 둘 사이를 예전처럼 복원하는 것이 영진위와 신임 위원장의 역할인 것 같다. 무엇보다 제작지원금은 절대 축소 혹은 없애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재능있는 후배 감독들이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1. 소통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위원장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합리성, 일관성, 투명성, 책무성 등이 부재했기 때문에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은 예견된 실패였다고 본다.

2.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이 이대로 진행되면 큰일이다. 영진위가 현재 한국영화 현실에 맞는 계획을 세웠는가, 영화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든다. 가령, 국제영화제 예산 축소, 직접 제작지원(현금지원)을 간접제작지원(스탭 인건비 지원) 방식으로 바꾼 것, 시네마테크 지원금 축소 등은 대단히 현실성이 없는 계획으로 보인다.

3. 위원장과 위원회의 관계는 때로는 한몸이고, 또 때로는 상호견제가 필요한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현재 김의석 감독의 위원장 대행 체제는 절름발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새로 공모해서 좋은 사람을 찾고, 필요하다면 위원회도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이 어떨까. 다만, 현장성, 원칙성, 전문성, 참여와 소통을 통해 상호 책무성 등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로 말이다.

정연 (프로듀서·<내 동생>)

1. 조희문 체제의 영진위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사업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2. 간접제작 지원방식인 스탭임금비 지원의 경우, CJ, 롯데, 쇼박스 등 메이저 제작사를 비롯해 영화사들이 한편씩 만들 때마다 영화발전기금을 통해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제도다. 제작사나 투자사가 스탭들에게 당연히 지불해야 할 돈을 왜 국고에서 나가야 하나? 그 돈으로 독립영화나 시네마테크를 지원해도 시원찮을 판에….

3.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최현용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

1. 무능과 부패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영진위를 혹은 영화계를 팔아넘긴 이들이 문제였다.

2. 이번 예산안은 자본의 모럴 해저드를 유도할 우려가 다분하다. 인건비 지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기본적으로 영화 제작비 안에는 인건비가 포함된다. 그런데 그 부분을 별도로 지원하겠다는 건, 자본더러 인건비 부분을 신경쓰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 지금 영진위에선 위원장과 사무국장이 공석이다. 이들까지 포함하여 새롭게 구성될 영진위 위원회가 좀더 팀워크가 있었으면 좋겠다. 위원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영화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문화부를 상대하기도 어렵지 않나.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1. 애초에 조희문 위원장은 영진위의 수장으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영진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그 기관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런 사람을 임명한 문화부의 인사권이다. 강한섭과 함께 단일 임기 내 불명예로 물러났다는 것은 문화부의 인사권의 명백한 실책이다.

2. 국고로 써야 할 예산을 영진위 영화발전기금으로 떠넘겨놓은 게 가장 큰 문제다. 가령, 영진위 직원들의 월급을 국고에서 충당하겠다는 건데, 왜 그 돈을 영화발전기금으로 써야 한단 말인가. 영화발전기금은 극장 요금에서 걷어간 돈인데, 국민 돈으로 영진위 직원들의 임금비를 준다는 건 말이 안된다. 또 하나는 제작지원심사를 불공정하게 했으면 앞으로 공정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직접 제작지원방식을 간접 제작지원방식으로 바꾸나.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경우다.

3. 솔직히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문화부가 현장 영화인들이 반대하는 두 인물(강한섭, 조희문)을 임명해왔는데, 앞으로 잘할 것 같나. 그나마 기대를 한다면 신임 위원장은 현장, 한국영화산업, 한국영화발전방안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1. 장기적인 플랜이 전혀 없이 즉흥적인 정책들이 시행되어온 게 문제다.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체 어떤 계획으로 앞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예측할 수가 없어 혼란이 가중되었다.

2. 시네마테크에 대한 예산 삭감은 제대로 된 평가나 향후 대책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튀어나온 문제다. 현재의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이 통과되면 시네마테크는 더이상 존속될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한해 동안 영화인들과 관객의 후원으로 버텼지만 그건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그걸 계속 감수하면서 내년에도 진행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네마테크 성격으로 봐서도 이같은 운영은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3. 영진위는 한국영화계 최고의 집행기관, 결정기관, 판단기관인데 그런 만큼 영화 정책 실무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1, 2년 동안은 그런 신뢰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두번이나 잘못된 판단을 한 문화부의 잘못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판단과 집행을 위임할 수 있을 만큼 신뢰성과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1. 이전 영진위 시절보다 문제가 직접적으로 불거진 시간이었다. 좀 일찍 끝났어야 하는데 너무 오랫동안 일하신 거 같다. 전체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위원장 체제였는데, 뒤늦게라도 위원장이 물러나게 되어 반갑긴 하지만 너무 늦게 바뀌어서 그닥 반갑지 않은 양가적인 감정이다. 착잡하다.

2. 조희문 위원장이 해임되면서, 마치 개인의 비리나 무능력만이 문제였다는 식으로 논의되는 게 가장 문제다. 위원장 하나를 자름으로써 문화부가 현재의 기조를 그대로 밀어붙이는 건 본질을 속이는 상황이다. 독립영화제작지원 자체가 삭감되고 3D입체영화에 대해 과도한 지원을 하는 등 큰 문제를 다시 한번 논의하면서, 영화계 발전을 위한 내년 사업 계획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3. 더이상의 이념대결 논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실질적으로 한국영화발전을 위해 터놓고 맡길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새로 뽑혔으면 싶다. 그리고 새로운 위원장을 뽑는 과정이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논의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정리 김용언, 김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