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엔딩은 김전일의 자신만만한 선언으로 가속이 붙는다. 왜 어항이 깨졌는지, 왜 눈밭에는 발자국 하나 없는지, 왜 산장 관리인 할머니는 한밤중에 환기를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는지. 김전일은 하나하나 트릭을 설명하며 범인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범인도 알고 보면 사연있는 사람일 때가 많긴 하지만 그 사연에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잠시. 퍼즐풀이하는 재미가 어디까지나 우선하게 마련이다.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은 그런 퍼즐풀이의 쾌감을 최대한으로 밀어붙였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대로다. 이 책에서 주인공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욕망은 지적 만족감이다. 남들이 풀지 못하는 퍼즐을 만들고 싶은 욕망. 인터넷상에서 서로 알게 된 다섯 사람은 본명을 포함해 서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도 불편함이 없는 이유는 서로 모르는 편이 나은 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살인 게임. 밀실 수수께끼부터 시체가 여자 옷을 입은 이유, 사라진 손목의 행방까지을 풀이하는 추리게임이다. 다만 이들이 풀어야 할 수수께께는 가상의 것이 아니다. 그들 각자의 손으로 직접 저지른 살인을 퀴즈로 내놓는 식이다. 퀴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면 더 많은 단서를 주기 위해 새로운 살인을 저지른다. 사람이 계속해서 죽어나가자 여기서 그만두고 정답을 공개하는 편이 어떻겠느냐는 말에는 이런 답이 나온다. “탐정은 범인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아. 백명이 살해당하더라도.” 생각해보면 긴다이치 코스케를 비롯한 명탐정들이 사건을 해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이 책장의 이슬로 사라지던가.
경찰소설의 대가 사사키 조에게 나오키상(142회)을 안긴 <폐허에 바라다>는 <밀실살인게임>과 정반대다. 주인공 센도는 경찰이지만 모종의 사건 때문에 자택 요양을 명받은 상태다. 지인들은 그에게 사건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좀처럼 청을 거절하지 못하지만 그에게는 수사권도 없고 당연히 범인 체포도 불가능하다. 표제작인 <폐허에 바라다>는 경찰과 탐정 사이에 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헤아리는 주인공 센도의 됨됨이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고향 유바리가 재정파탄을 맞았던 2006년경 일년간 신문에 르포를 연재한 사사키 조는 취재 당시 보았던 황량한 풍경을 인간의 내면에 투영한다. 13년 전에 센도가 담당했던 사건과 유사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순순히 죄를 자백했는데, 재판 과정에서 극심했던 그의 빈곤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는 범인 앞에 범인찾기는 퍼즐풀이가 되지 못하고 괴로움에 잊었던 비참한 과거가 범인뿐 아니라 센도에게까지 잔상을 남긴다. <오빠 마음>도 <사라진 딸>도, 사건에 파고들수록 불행한 사람들이 늘어간다. 업무복귀를 좀처럼 하지 못하는 센도의 심경과 살인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황폐한 마음의 풍경. 한창때의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는 듯한 애수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