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경로우대’로 영화를 보고, 배우 손숙이 명절 ‘독거 노인’ 관리를 받는다. 엊그제 취업을 고민하던 내 또래들은 하나둘 정년을 고민한다. 아, 세월은 이리 빠른데 (노동의) 하루는 왜 이리 길다냐.
우체국에 볼일 보러 갔다가 ‘G20 행사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 한 시간 늦게 문 연다’는 안내문 앞에서 우두망찰 서 있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직원 가운데 출근길 차를 몰고 코엑스 앞을 지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아했지만 덕분에 그들의 근무 시간이 한 시간 단축된다면 좋겠구나 싶으면서도 그래서 나의 일과가 미뤄진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비정상적으로 진행된 정상회담이 끝났으니 말인데, 다음에 이런 행사를 열 순번이 된다면 멀쩡한 도심 한가운데를 섬으로 만들 게 아니라 차라리 독도나 대마도 같은 곳에서 해주시기를, 그도 아니면 ‘오너’인 미국 대통령을 위해 미군기지에서 열 것을 당부드린다. 세계 경제를 말아먹은 금융 자본에 대한 규제와 그런 자본의 분탕질을 주도한 국가들에 대한 책임를 따질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들에 대한 면죄부를 공식화하는 행사에 왜 생업에도 바쁜 우체국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냐고요.
사실 이런 행사는 ‘그들만의 행사’여서는 안된다. 정부가 지나친 홍보 공세로 ‘비호감 여론’을 상승시키지만 않았다면 세계인의 한명으로서 찬찬히 따져볼 게 적지 않았다. 핫 머니라 불리는 저질 투기자본의 유·출입으로 산업 기반은 교란되고 고용 환경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부동산은 널뛰었다. 금융 위기에 따른 긴축재정으로 사회 안전망은 허물어졌다.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방안도 이른바 ‘녹색 성장’도 자유로운 (금융) 거래에서 찾으려 드니, 질 낮은 일자리 사람들은 더 괴롭다. 20개국에 끼지 못하는 나라 사람들은 더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 와중에 오래 사는 사람들은 더더더.
20대의 청년(신입)과 50대의 장년(간부)이 하는 일이 같지 않은 마당에, 채용과 정년을 연관짓고 복지와 연금을 연동하는 건 자본의 술수이자 정부의 직무유기다. 특히 좀 사는 나라 사이에서 최장의 노동시간(에다가 아마도 최장의 출퇴근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기간을 늘리는 해법을 찾는다면, 찾는 노력이라도 한다면, “나도 한때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이렇게 공허하지는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