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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아이들과 ‘밀당’ 잘하는 법
이다혜 2010-11-11

<아빠는 경제학자> 조슈아 갠즈 지음 / 이음 펴냄

지난 8월에 있었던 스매싱 펌킨스 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구를 이끌고 스탠딩에 도전한 다혜리(34살, 애인 급구)씨는 키 큰 금발 청년과 몸싸움을 하며 헤드뱅잉을 하고 있었다. 공연 후반부에 이르러 다씨는 부른 곡과 남은 곡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곡’이 나오지 않은 채 공연의 막이 내렸다. 오오오! 역시 ‘그 곡’은 앙코르로 해주려는 모양이었다. 없던 아드레날린이 다씨의 지친 척추를 타고 흘렀다. 소풍철 러시아워의 사당역에서 환승을 시도하는 회사원처럼, 다씨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며 ‘그 곡’을 기다렸다. 앙코르곡을 하긴 했다. ‘그 곡’이 아니었다 뿐이지. ‘귀요미’ 빌리 코건은 순식간에 ‘빌어먹을’ 빌리 코건으로 전락했다. 설마 ‘그 곡’을 안 부르고 공연을 마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곡’을 부르라는 뜻에서 내가 10년치 힘을 다 쏟았는데. 그렇다, 그 비운의 밤에 <1979>는 끝내 부름받지 못했다. 나는 없던 기운을 끌어모아 비명을 지르며 <1979>를 ‘내놓으라고’ 코건에게 요구했고 그는 그 요구를 묵살했다. 차가운 도시 남자 빌리 코건은 <1979>를 미끼로 관객에게 더 큰 비명을 끌어낸 뒤 도도하게 사라졌다.

“협상의 첫 단계는 상대방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다. 경제학자식으로 조언하자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머릿속에 모형화한 다음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호주의 경제학자 조슈아 갠즈는 내가 스매싱 펌킨스와 경험했던 ‘밀고 당기기’ 경험을 육아를 통해 경험했다. 경제학자답게 상황을 분석하고 배변습관을 인센티브 도입을 통해 자리잡게 하려는 시도를 한다. 조슈아 갠즈는 출산과정부터 갓난아이에게 혼자 잠자는 습관 들이기, 배변습관 들이기, 청소하는 법, 정리하기, 벌주기 등 육아과정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을 세 사례(아이1, 아이2, 아이3)를 중심으로 경제학적으로 풀어냈다.

조슈아 갠즈의 유머감각이 발군이라 쉼없이 웃게 되는데, 특히 부모들 특유의 피해의식(불면과 너저분함이 야기한)을 여과없이 옮기는 대목들이 재미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우는 이유는 울면 부모가 와서 달래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으로, 아이들은 부모를 소환하기 위해 연기를 서슴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한다. “아이1은 생애 첫 6주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않았다. 우리는 많아야 네 시간 정도를 쉴 수 있었다. 나는 환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고속도로에서 말이 달리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식탐이 강한 아이가 기저귀를 떼게 하기 위해 화장실에서의 배변 한번에 젤리를 먹는 습관을 온 가족이 들였다가, 오히려 부모 두 사람이 젤리만 보면 배변 생각이 나면서 젤리를 싫어하게 되기도 했다. 예술적인 기질이 강한 아이2가 한밤중에 온 집안에 낙서를 해놓았을 때는, 장래 미켈란젤로의 희망을 꺾는 일이 될지라도 “나로서는 너저분함과의 전쟁에서 테러리스트 편이 승리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는 단호함으로 낙서를 싹싹 지워버렸다. 육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밀고 당기기를 경제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는다. 무엇보다, 조슈아 갠즈는 독자와의 밀고 당기기에서 유머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