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슈반크마이에르, 이지 트릉카, 브제티슬라브 포야르, 카렐 제만. 마리오네트로 대표되는 퍼펫 시어터(puppet theater)의 유구한 전통과 공산주의 정권이 정책적으로 키워낸 애니메이션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이 체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탁월한 황금기를 가능케 했다. 제4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에서는 지난 10월31일 브제티슬라브 포야르의 제자이자 프라하영화TV예술대학 애니메이션과 과장을 역임하고 있는 애니메이터 아우렐 클림트를 초청해 그의 주요작 상영과 함께 퍼펫애니메이션 제작에 관한 총론을 듣는 마스터클래스 ‘아우렐 클림트의 체코 퍼펫 애니메이션’을 열었다.
-체코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이래 퍼펫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 편수가 많이 줄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그 이유가 뭔지,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정권이 전적으로 산업 전체를 통제했기 때문에 대형 스튜디오 두곳에서만 작품 활동이 이뤄졌다. 대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나 같은 창작자들의 독립적인 스튜디오의 손으로 넘어왔다. 자유를 얻은 대신 예산문제가 힘들어졌다. 체코 TV방송국이나 또 다른 해외 회사와 함께 공동제작을 해야 한다.
-그럼 당신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1989년 벨벳 혁명이 일어난 다음 작품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혁명이 일어났고, 프라하영화TV예술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이지 트릉카 스튜디오에서 퍼펫 애니메이션 작업에도 참여했다.
-유독 체코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활발한 이유는 뭐였을까? 이지 트릉카, 얀 슈반크마이에르, 브제티슬라브 포야르 등의 거장들이 연달아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마리오네트 같은 퍼펫 시어터의 훌륭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월트 디즈니 혼자 독보적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다른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생겼지만, 체코에는 예전부터 인형극의 거장 연출자들이 많았다. 다른 유럽 사람들이 말하길 체코인들은 황금손을 가졌다고 한다. 손재주가 좋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이지 트릉카는 근대 인형극을 확립한 요제프 스쿠파의 제자였다.
-퍼펫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꼽는다면. =첫째, 어느 정도 불완전한 조건에서도 비현실적인 시간을 창조할 수 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나 셀 애니메이션보다 동작 혹은 시퀀스가 훨씬 중요한 장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매 순간을 집요하게 점검하며 완벽한 수정을 가함으로써 최종 결과물에서는 완벽한 동작들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퍼펫으로 작업할 경우 동작을 아무리 수정해도 완벽하게 매끄러운 느낌을 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여타 동작들의 도움으로 인간적인 활기와 리얼리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인형이 입술을 움직일 때, 그 입모양이 실제 발음에 따라 완벽하게 변할 필요가 없다. 입을 벌려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손발이라든지 여타의 동작들이 더 중요하다. 부분이 아닌 전체적인 표현을 통해 완벽하게 보충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언어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보이는 것’이 중요한 장르다. 둘째, 손으로 직접 그 촉감을 느끼면서 원하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게 가장 아름다운 특징이다.
-이번에 국제가족영상축제에서 상영된 당신의 두 작품 <마술종>과 <핌파룸>은 모두 민담과 동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각국의 민담에서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당신은 디테일에 있어 체코의 지역색을 강조했다. 게다가 매우 냉소적인 블랙코미디 성격과 악의 세계에 대한 매혹 같은 정서가 강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특징은 이번 작품들에만 해당되는 거라고 보면 된다. <핌파룸>은 체코의 유명한 민담집에서 충실하게 옮겨온 작품이다. 이 작품은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 2001년에 만든 1편이 이번 상영작이고, 2편은 2006년에 발표됐으며 3편이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퍼펫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제작 기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고 들었다. 당신의 경우 평균적으로 얼마 정도 걸리는가. =<핌파룸> 같은 옴니버스 작품에 들어가는 중편 하나는 1년에서 1년 반까지 걸린다. 신작 장편 <라이카>는 3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 6명의 스탭만 데리고 하는 인디펜던트 작업이기 때문에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하진 못한다. 대신 내가 만들고 싶은 걸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준비 중인 <라이카>에 대해 듣고 싶다. =애니메이션과 3D를 결합한 작품이다.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가 주인공인데, 작품의 1/3 지점에선 현실의 라이카처럼 숨을 거둔다. 하지만 그 다음 모종의 힘으로 부활해 우주의 다른 동물들과 힘을 합쳐 악한 인간들에게 대항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