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10년 영화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조희문 위원장
예정대로라면, 11월5일에는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의 청문회가 열렸을 것이다. 원래는 11월2일이었지만 조희문 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청문에 충실히 임할 수 없다며 하루 전인 11월1일, 일정을 연기해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 요청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전 11시37분, 한국촬영감독협회는 “문화부는 영진위 위원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가?”란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송했다. 이어 오후 5시57분에는 성명서의 내용을 보강하고 한국영화인원로회와 한국영화감독협회 등 8개 영화원로단체의 이름이 합쳐진 같은 제목의 성명서가 다시 발송됐다. 같은 사안을 두고 같은 대상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명서는 지난 10월28일 등장한 또 하나의 성명서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민주사회시민연합, 인터넷미디어협회 등 50개 우파단체가 방송영화시장 개혁을 위해 연대했다는 ‘50개 애국우파단체연합’에서 문화부에 요구한 공개질의서였다.
총 9개 영화단체와 50개 애국우파단체의 성명서는 모두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절차에 대한 문화부의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이유도 비슷하다. “문화부에서 작성한 해임사유라는 내용을 보면 위원장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구체적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떻게든 시비를 거려는 특정 단체의 마구잡이 주장과 그것을 부풀리는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나열하고 있다.”(9개 영화원로단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처분의 수위를 정하지 않았기에 문화부에서 이를 근거로 해임하려면 최소한의 쌍방조사가 필요함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중략)… 문화부에서 사실로 든 내용은 대다수 야당 의원과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된 단체의 주장으로 열거되어 있다.”(50개 애국우파단체) 청문회를 하루 앞둔 4일 현재, 두곳에서 나온 또 다른 성명 역시 손발을 맞추고 있다. 조희문 위원장의 청문회를 공개로 진행하라는 요구다. 이번에도 이유는 비슷하다. “본 연합이 판단할 때, 조희문 위원장의 거취는 위원장 한명의 자리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좌우갈등 및 영화계 내의 이념 지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50개 애국우파단체) “영진위 위원장의 거취는 단순히 특정한 개인의 진퇴문제가 아니라 영화계의 안정과 소통 그리고 통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문제라고 본다.”(9개 영화원로단체)
두곳에서 내놓은 성명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여부를 대한민국의 정체성 혹은 이념갈등과 연결짓는 부분이다. 조희문 위원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었던 걸까? (그렇다치고)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이 그들에게 가져올 공포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50개 우파단체의 성명은 조희문 위원장을 매우 중요한 우파인사로 부각하고, 9개 영화단체의 성명은 이를 토스하고 있다. 그들은 영화계의 안정을 위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이념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영화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이념갈등이라니. 조희문 위원장에 대한 과대포장인 한편, 현실적인 판단 착오다. 조희문 위원장에 대한 문화부의 해임절차는 그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고, 이를 국정감사장의 의원들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희문 위원장의 잘못은 청문회를 통해 다시 검토될 것이고, 이 자리에서 그는 소명기회를 가질 것이다. 9개 영화단체와 50개 애국우파단체가 절차상 우려하는 점들이 어차피 청문회에서 해소될 거란 얘기다. 그러니 이들의 성명서는 사실상 문화부를 향한 게 아닐 수도 있다. 조희문 위원장의 해임으로 자신들의 세력이 약화될 것에 대한 ‘괜한’ 두려움의 표출, 혹은 그들이 사랑하는 조희문 위원장을 향한 팬레터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