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선배 K는 시시콜콜한 기억력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 K는 언제나 자기의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를 자랑하며, 누구는 뭘 잘못했고 누구는 뭐가 틀렸으며 누구는 왜 글러먹었는지를 따지곤 했다. K가 뉴스의 사실 관계를 기억하는 능력이 좋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에 K가 타인에게 ‘지적질’을 할 때면, K는 잘못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데 반해 주변 인간들은 왜 다 저 모양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바른 사람인 것치고는 주변 사람들이 K선배와 같이 지내기 참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K가 슬쩍 속삭였다. “K선배, 자기한테 불리한 건 멋대로 기억해버린다니까.”
사례2.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보고 기억하는 대신 찍는다. 찍으면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면 사진 속 풍경대로만 기억나는 경험을 한 적 없는지? 어렸을 때의 추억이라고 하면 사진에 있는 대로 앞뜰, 안방, 놀이터에 한정되지 않던가?(나중에 부모님께 물으니 그 마당은 옆집 마당이라든가?) 기억에 도움되라고 사진을 찍었더니 사진이 기억을 지배하는 경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은 ‘기억과 시간 그리고 나이’를 다룬다. 특히 나이듦과 기억에 대한 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기억력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 부모님이 치매의 전조라고 걱정하는 기억력 감퇴는 실제 기억의 상태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한 사실은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테스트에서 우울증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우울하고 소극적이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무기력하다는 감정을 나타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신경증의 측면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태를 드러냈다. 그들의 문제는 기억력 감퇴보다 우울증과 신경증에서 발생한다.” 실제 노화로 인한 인지 능력의 쇠퇴는 50살이 되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하고 실제 가속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70살경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불안감이 가장 심한 시기는 바로 50살 때다. 그리고 우울증과 신경증이 기억력 감퇴라는 환각을 낳는다. 기억 자체보다는 기억에 대한 신뢰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자서전에 흔히 등장하는, 그리고 40대 이상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담을 돌이키며 흔히 말하는 “그것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추억은 20∼25살 때 주로 등장한다. 경력이 화려한 사람들의 경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 사건들은 경력이 거의 시작되기 전의 시기에 자리한다. 보통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영화를 꼽아달라는 설문에 평균 22살 때 상영된 영화를 꼽는다. 80살을 살아도 100살을 살아도 20∼25살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어른들과 술자리에서 왜 그들의 청춘 시절 무용담을 꼭 반복해서 또, 또, 또 듣게 되는지의 신비가 여기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뮤지코필리아>의 올리버 색스와 저자의 인터뷰와 ‘향수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200쪽이 채 안되지만 다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다시 첫장을 펴게 된다. … 기억이 안 나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