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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직격탄
주성철 2010-11-02

권력의 뒤틀린 먹이사슬을 장르로 시원하게 헤집어 낸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자신과의 싸움. 류승완의 <부당거래>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그의 서명과도 같은 액션신들은 완전히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듯 작정하고 덤벼든다. 우리가 흔히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향해 기대하는 것, 장르나 액션이라는 축에 기대어 예상하는 것, 그리고 영화광 감독의 작품을 헤집기 위해 여타의 ‘한 핏줄 영화’들을 마구 떠올려보는 것 그 모두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나 있다. 그의 이전 영화들과 명쾌하게 이어지는 교집합이라면 류승범이라는 배우 정도랄까. <부당거래> 안에는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1994)도 있고 봉준호의 <마더>(2009)도 있지만 아련하게 홍형숙의 <경계도시2>(2009)의 느낌도 배어난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원본을 찾는다는 행위는 무모하다. 오히려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주할 때 많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부당거래>가 이전 류승완의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핵심은 그가 자기만의 ‘오리지널’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류승완식 액션은 없다

대한민국 검사와 경찰과 스폰서와 기자가 한편의 스릴러영화를 찍는다.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지는데, 계속된 검거 실패로 질타를 받던 경찰청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다. 가짜 범인인 ‘배우’를 만들어 사건을 종결짓는 것. 사건 담당으로 지목된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황정민)는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번번이 승진이 좌절됐지만, 승진을 보장해주겠다는 강 국장(천호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사건에 뛰어든다. 그는 스폰서인 해동건설 사장 장석구(유해진)를 이용해 사건과 무관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조작해 사건을 마무리짓는다. 한편, 부동산 업계의 큰손 김 회장(조영진)에게 스폰을 받는 검사 주양(류승범)은 최철기가 입찰 비리건으로 김 회장을 구속시켰다는 사실에 분개해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렇게 영화를 만든 건 류승완이지만 영화 속 그들은 그보다 더한 영화를 만든다.

<부당거래>의 검사(류승범)는 치밀하게 각본을 짜고 경찰(황정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출하며 스폰서(유해진)는 그 디렉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꾹 참고 열연을 펼친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직접 밥상을 다 차려야 하는 수고가 있긴 하지만 어쨌건 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니꼬워도 참는다. 잘난 놈 하나 없지만 흥행은 제작 전부터 보장돼 있다. 펀딩 걱정도 없고 개봉 스크린 수를 염려할 필요도 없다. 전국 4천만 인구 각 가정의 TV 브라운관에서 바로 와이드 릴리즈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는 스타 캐스팅을 하지 않은 탓에 금세 뒤틀린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아무리 가진 것 없는 무명 비직업배우를 캐스팅했다지만 개런티와 복지에 신경을 안 쓰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지만, 좀 과장하자면 보는 사람에 따라 영화 속 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 이른바 영화판의 고단함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감독이건 검사건 경찰이건 영화 하나 만들기 참 힘들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모두에게 배우 캐스팅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부당거래>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괜히 엉뚱하게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를 끌어들이자면 <부당거래; 범죄조작단>쯤 될 것이다.

<9시뉴스> <PD수첩>을 보는 듯

아마도 ‘직격탄’이라는 표현은 <부당거래> 같은 영화에 써야 하지 싶다. 근래 이처럼 박력 넘치는 한국영화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권력층의 상부를 향한 도발이 건드리고 암시하고 비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뺨을 후려갈기는 정도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 검사와 스폰서의 더러운 유착, 대형건물 입찰 비리, 그리고 진실은 외면한 채 그 모든 것을 웃고 즐기며 수수방관하는 언론. 이처럼 <부당거래>를 가득 채운 사건들은 마치 <9시뉴스>나 <PD수첩>류, 그리고 다큐멘터리처럼 현재 우리 사회의 톱뉴스들을 스크랩해놓은 것 같다. 짜증나게 배배 꼬인 전선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심정으로 사건을 전개하면서 류승완은 ‘다 알면서 왜 그래?’라는 심정으로 좀체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스폰서가 검사에게 건넨 고급시계가 다시 “요즘 핸드폰으로 시계 보니까 시계 차고 다닐 일이 없다”며 기자의 팔목에 채워진다. 기자의 다른 팔목은 한복을 차려입은 요정 기생의 목을 두른다. 모든 게 돌고 돌아 건네지고 감고 감싸며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끊으려야 끊어지지 않는 부정과 비리의 악순환. 어차피 그들은 쓰레기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지갑에서 나온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변변한 폭력장면이나 욕설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가 ‘사회지도층이 국민을 상대로 조작을 한다’는 설정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일목요연한 ‘대한민국 생활백서’로서 교육적 효과 또한 큰 이 합당한 영화에 내려진 지극히 부당한 결정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다는 말, 이럴 때 쓴다. 그렇다, 영상물등급위원회도 그렇게 자기들만의 영화 하나 만든다. 하지만 배우는 좋은데 연출이 빵점이다. 그렇게 매번 후진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투자를 받는 연출자도 없을 것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솜씨 발군

류승완의 영화는 늘 다른 영화를 유추해 재구성하거나 ‘액션’이나 ‘코미디’라는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감독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언제나 그렇게 바라보도록 훈련돼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부당거래>는 기존의 필름누아르, 정치스릴러, 혹은 액션영화와 비교해도 독창적인 지점들이 있다. 가령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장면의 경우 “어? 어?” 하는 사이 묘한 눈빛만을 주고받고 우왕좌왕하면서 사건은 종결된다. ‘경향, 한겨레, 조선, 동아’ 같은 구체적인 명칭들이 등장함은 물론 경찰서 내 ‘경찰대 라인’의 존재, 실제 인물과 회사명을 패러디한 것 같은 이름 등 계속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솜씨도 발군이다. 무엇보다 일단 영화 속 누군가에 기대 스토리를 따라가거나 특정 인물의 처지에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없다. <부당거래>의 가장 큰 재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냇가의 단단한 징검다리를 하나씩 밟아나가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계속 헛딛게 만든다는 점에서 온다. 그래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고 반전이 계속될 때마다 끊임없이 긴장하게 만든다. 어쩌면 영화 속 장면들이 독창적이라기보다 그런 리듬의 순환이 독창적이다.

그 속에서 황정민과 류승범과 유해진, 그들은 지난 몇년간 거의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들은 누가 더 악당인지 내기를 하는 것 같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자료와 증거를 준비하고 또한 그것을 예상한 당사자는 그 이상의 증거를 제시하려 동분서주한다. 공격과 방어, 내가 너보다 더한 증거와 자료를 갖고 있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 그것은 상대의 초식과 기술을 간파하고 더 큰 비기를 연마한 고수의 여유와도 같다. 그래서 <부당거래>는 류승완의 영화 중 가장 액션이 없지만 아니, 시종일관 말로만 싸우기에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마치 익숙한 그의 액션영화를 보는 것 같은 합의 쾌감을 준다. 그래서 이것은 또한 류승완의 영화가 분명 맞다. 말하자면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은근히 기대했을 법한 류승완 특유의 액션신이 없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박력과 투지로 넘친다. 이성민, 정만식, 김수현 등 조연들의 맛깔 나는 연기 또한 그 뒤를 든든히 받친다.

기분 좋은 것은 류승완이 자기의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 더욱 노련하고 세련돼졌다는 거다. 보통 한 사람의 영화를 얘기할 때 그 두 가지를 분리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부당거래>는 그것이 하나로 만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자 당대의 현실과 장르영화가 조우하는 무척 특별하고 독창적인 사례다. 좀 식상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류승완은 여전히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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