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신을 지키고 싶다. 사회적 체면과 지위(씨네리 종신필자라는!)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아무도 나에게 그걸 묻지는 않지만, 미국산 쇠고기 들여온 협상대표에게만 그게 있는 게 아니거든(옆이나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한 소신은 대단히 후지다. 하물며 국민을 적대시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공직’자의 소신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내년이면 여섯살이 되는, 남달리 운동을 좋아하고 심지어 집착하는(바깥놀이 못한 날에는 숟가락 물고 식탁 다리에 매달려 있거나 물구나무서서 텔레비전을 봄) 아이를 둔 처지라 시의 산하기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체육기관에 보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에 대단위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이 기관에 대한 과열조짐이 일더니 지난해에는 ‘새벽 4시에 갔더니 끄트머리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인지 올해에는 공개추첨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반가웠다. 애 운에 맡기는 것이 제일 속 편하니까. 그랬던 것이 등록 시기가 되자 뒤집어졌다. 예전처럼 선착순 마감을 한다는 것이다. 하룻밤 고생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자식을 그곳에 보내고픈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쳤다고 한다.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새벽 혹은 전날 밤부터 덜덜 떨면서 줄을 서서 기어이 아이를 그곳에 보내야 하는가. 불필요한 경쟁이다.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옳지 않을뿐더러 미학적으로도 꼴불견이다. 무엇보다 나의 원래 의도와도 맞지 않다. 아이가 부디 교육기관에서 ‘진을 다 빼서’ 귀가했으면 하는 게, 그래서 바깥놀이를(괴물놀이나 잡기놀이, ‘엄마도 매달려봐’ 따위) 요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나의 ‘이기적 모성’이니까. 어떻게든 일신상의 안락을 꾀하는 소신파인 내가 줄을 서서야 되겠니? 왠지 여기서 무너지면 ‘로드 매니저 엄마’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공포심마저 들었다.
중요한 건 원하는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양질의 보육·교육기관이 많아지는 것이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합리적으로 검토하던 방침까지 무력화할 ‘어떻게든 내 자식은…’ 대열에 편승하느냐 마느냐 목하 고민 중이다. 나 하나 ‘거부’한다고 이 문제가 달라지겠는가마는 고민 중에 드는 생각은, 적어도 내가 거부하면 이 문제에서 ‘나’를 지킬 수는 있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