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난 백수였다. 당연히 주머니도 훌빈했기에 집 안에서 뒹굴뒹굴 시간 죽이기만이 가능했던 그 시절, 유일한 낙은 TV였다. 불행히도 당시엔 케이블TV도 없었고 공중파도 지금처럼 종일방송을 하지 않았다. 오후 6시에나 시작하는 다른 공중파 방송을 기다리다 지칠 때면 오후 4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EBS로 채널을 돌리곤 했다. 물론 그 시간대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만 방송했지만 시간을 때우기 위한 일념으로 좀비처럼 멍하니 TV에 눈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프로그램 하나를 발견했으니 그건 <꼬마 요리사>였다. 노희지라는 꼬맹이가 요리사라면서 오물오물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정신줄을 놓을 정도였다. 곧바로 동료 백수들에게 전화를 돌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지금 EBS를 틀어’라고 제보했고 그들은 ‘정말 탁월한 발견’, ‘날카로운 눈매’라면서 나를 칭찬해줬다. 얼마 뒤 <꼬마 요리사>가 상당한 인기를 얻으면서 노희지양이 어린이 스타가 됐을 때 정말 내가 ‘키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노희지양이 스타가 되는 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먼저 ‘스타성’을 발견했다는 이유 만으로 흐뭇한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건 팬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그런 경우는 많다. 1990년대 후반 CDnow.com(지금은 Amazon.com으로 흡수)를 통해 스코틀랜드 밴드 벨 앤드 세바스천을 발견했는데 몇년 뒤 한국에서 인기를 얻었을 때나 <페어런트 트랩>에서 깜찍한 연기에 반했던 린제이 로한이 스타로 성장했을 때(근데 지금은 대체 왜!)도 비슷한 부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그런 경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정말 이들을 키웠다는 망상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이런 의도적인 착각 혹은 혼자만의 자부심은 건전한 팬심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키운’ 사람인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번 특집 기사를 통해 소개하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얼굴 10명도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이미 ‘찜’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부분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니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키워볼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모두 재능과 노력이 갖춰진 배우들이니 여러분의 부듯함 또한 배가될 게 틀림없다.
이번이 777호다. 카지노의 슬롯머신에서 잭팟을 울리게 하는 바로 그 행운의 숫자 말이다. 777번 고민한 뒤 만들어낸 777자의 기사 777개를 담을 수는 없었지만, 여러분에게 초대박 행운을 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이번호에 담았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표지에 새겨진 ‘트리플 세븐’ 또한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애교와 유머로 받아들여주시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이번호 777권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들은 것 같긴 한데….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