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주변에서 사람을 소개해달라는 청을 받을 때가 있다. (소개팅 말고 채용!) 혹은 해마다 가을쯤 보는 서류 전형이나 면접 직후, 관련 해프닝을 듣게 되는 일도 잦다. 같이 일하는 후배를 콕 집어 “얘 어때?” 하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때, 일의 성격이나 회사 성격, 질문한 사람의 일하는 스타일에 따라 답하는 내용은 달라지게 마련인데, 거의 예외없이 감점요소로 작용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면접관에게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해 흉보기.’ 지금 회사가 얼마나 형편없는 곳인지 얘기하면 자기가 가진 능력이 돋보이고, 그런 이상한 회사에서도 참고 다닌 자신을 인정받으면 이직이나 취직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면접관은 이미 업계에 있는 다른 회사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게다가 이직하겠다고 현 직장 욕이나 해봐야 불평꾼으로 찍히는 일도 많다.
<도서관 전쟁>으로 라이트 노벨 팬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사랑, 전철>로 여성 독자의 지지를 받은 아리카와 히로의 소설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는 석달 만에 첫 직장을 박차고 나온 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어머니의 정신병 발병을 계기로 구직에 나선 이십대 중반의 남자 이야기다. 주인공 세이지가 취직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요즘 면접관들이 토로하는 고충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이력서를 한번 써서 여기저기 ‘돌려막기’를 한다. “<씨네21>에서 꼭 일하고 싶습니다”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가 “<한겨레21>에 글을 싣고 싶었습니다”라는 말로 끝난다고 생각해보라(웃긴 실수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지원자가 많다). 면접을 보러 와서는 자기가 현재 회사에서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 회사가 얼마나 웃기는 회사인지 늘어놓는다. 면접관 분위기를 보고 “텄다” 싶으면 면접이 끝나기도 전에 포기부터 한다. 애초에 출신 학교가 일류가 아니라 될 리가 없다 싶어 다음 원서를 넣기 전부터 기분이 착잡하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던 세이지는 자꾸 시험에 미끄러지던 어느 날 아버지와 상담을 하고 구직과정에서의 실수를 깨닫는다.
회사가 어떤 중매쟁이보다 조건에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 사람 일일 뿐이다. 세이지가 취직을 하는 과정은 어머니의 발병과 아버지와의 싸움, 공사판 막노동, 취업상담원의 모욕적인 응대, 셀 수 없는 취업 실패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세이지가 알게 되는 한 가지는 ‘원칙’이다. 세이지는 원하던 것보다 조건이 부족하지만 일의 성격이 마음에 차는 두곳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고 갈등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의 과정을 보면 왜 그가 ‘이번에는’ 취직이 되었을까를 알 수 있게 된다. 무슨 취업성공기같이 썼지만 사실 이 책은 동네 아줌마들에게서 이십여년간 괴롭힘을 당하던 어머니를 새집으로 이사시키기 위해 “내 집 장만”을 걸고 일하는 주인공 이야기다. 지난주 소개한 엄기호의 <왜 이것은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다만, 이쪽엔 기성세대가 가진 20대에 대한 생각이 더 들어 있다. 이쪽과 저쪽이 사실 한 세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