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1억2천만달러 짜리 영화 한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매우 비싸고 섬세하게 계획된 군사작전에 가깝다. “주의”(caution)야말로 그들의 표어였고, 이미 쟁취된 승리를 그대로 지켜내는 데에 온 힘을 다했던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라는 이 새로운 신화가 영화시장에 안착하고 이미 빼앗긴 당신의 영혼을 단숨에 공격하기 위해 이 영화는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며 위험요소들을 노골적으로 피해갔다.
투자에 대한 엄청난 이익(과연 ‘마법사의 돌’ 아닌가!)을 예견한 프로듀서들은 조앤 롤링이 조성해낸 어마어마한 어린이 문화현상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아니, 그것을 그대로 극장용으로 옮겨오는 방법을 택했다. 괴벽스런 환영(幻影) 그려내기가 특기인 팀 버튼은 AOL 타임워너가 원하는 일꾼이 아니었다. <나 홀로 집에>의 제왕 크리스 콜럼버스라면 적역일 터였다. 특히나 그의 초기 필모그래피에는 스필버그 제작의 어린이 어드벤처 <구니스>의 각본작업이 포함돼 있으니 말이다. 스티브 클로브스가 쓴 각본은 계단 밑 작은 방에서 무서운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그들의 뚱뚱이 아들에게 학대당하며 보내는 고아소년 해리의 불우한 어린 시절은 가볍게 지나간다. 11살이 되자 해리는 루비우스 해그리드(로비 콜트레인)라는 수다스런 괴물녀석에 의해, 이 밉살맞은 ‘머글’(마법사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해리의 사촌에게 굽실한 꼬리를 하나 붙여줌으로써, 루비우스는 해리를 마법의 빗자루에 태워 현대적인 런던거리 뒤쪽에 자리한 중세 테마파크 안에 있는 마법의 쇼핑몰로 데려간다.
그러고나선 이제 마법사가 되는 일만 남았다. 비록 어떤 기독교인들에게는 사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교육기관인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마술을 공부하며 말이다. 이국적? 아마도 그렇다. 희미하게나마 빅토리아 시대 계급구조가 호그와트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다. 비록 그릇 수북한 프렌치 프라이나 기름 밴 닭날개, 그리고 옥수수알이 저녁식사로 나오는 걸로 보아 식당은 분명 KFC가 운영하는 것 같긴 하지만. 온갖 민족과 인종이 뒤섞여 있는 이 영국 꼬마 학생들은 곳곳이 비밀통로와 금지구역, 그리고 유쾌한 아이들투성이인 즐거운 학교를 다니고 있다. 부모를 죽인 악마 마법사 볼드모트가 새겨넣은 흉터를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해리(대니얼 래드클리프)는 마치 불어 같은 느낌의 성을 가진 잘난 척하는 상류층 인사들의 분개에도 불구하고 호그와트에 잘 적응한다.
해리의 친구들은 마치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에서 뽑아온 듯한 아이들이다. 큰 눈에 빨간 머리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와 모든걸 다 아는 척하면서 두목 행세하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엠마 왓슨).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드림웍스의 <슈렉>과 외모가 유사한 형태의 괴물에게서 구해주기도 한다. 이 기품있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른들 배역은 웨스트 엔드의 저인망식 캐스팅의 진수를 보여준다. 피오나 쇼, 존 클리스, 존 허트는 일찌감치 카메오로 나오고 호그와트는 온통 리처드 해리스, 매기 스미스, 이언 하트, 조 와나메이커, 그리고 앨런 리크먼 등 쟁쟁한 배우들로 가득하다.
영화 <해리 포터>는 이렇다 할 특별한 면모가 없지만 콜럼버스 감독은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다양한 시각효과를 한데 모아 통일성 있게 배치하는 데에 성공하기는 했다. 마법의 거울, 용의 알, 입으면 안 보이는 망토, 그리고 날아다닐 뿐 아니라 로데오 경기의 야생마들처럼 콧김을 뿜기까지 하는 빗자루 등. 호그와트에 살고 있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새들, 고양이, 두꺼비들은 충분히 자연주의적이다. 이 호그와트 동물원에서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등장인물은 해리에게 발굽을 빌려주기 위해 어둠의 숲에서 육체를 입고 나타나는 뚱한 켄타우루스 정도일 것이다.
영화는 과연 원작소설의 정신에 충실하였는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단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그래서 대책없는 머글로 남아 있는 나로서는,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다음달에 <반지의 제왕>에 대해서도 내게 물어보라). <해리 포터>는 확실히, 영국 어린이 고전들의 풍요로운 토양에서 많은 요소를 빌려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지저분한 것들을 소재로 한 각종 재담들로 활기를 얻어, 내러티브 라인은 무난하게 예측가능하고 그래서 쫓아가기 편안하다. 비록 존 윌리엄스의 감정적인 음악은 때로 영국적인 은근한 분위기와 충돌하긴 하지만.
탄탄하지만 아무런 새로운 영감도 없는 <해리 포터>에는 활기가 결여돼 있다. 존경해줄 만은 하지만 좀 밋밋하다. 나는 이 영화가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경이에 대해 새로이 눈뜰 수 있기를 바라게끔 만들어주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다 자란 어른으로서 말하자면, 이 영화가 내 억압됐던 어떤 기억들을 휘저어준 것은 사실이다. 나는 내가 <제국의 역습>이나 <레이더스>의 강압적인 최신 버전의 상스러움에 향수를 느끼게 될 줄은 전혀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