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이돌 스타의 치기어린 외도라고 생각했다. 그룹 2AM의 멤버 임슬옹이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이민호의 골칫덩어리 후배 역으로 연기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한번하고 관두겠지 싶었다. 우리는 연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아이돌 스타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임슬옹은 폐쇄를 앞둔 간이역에 근무하는 역무원을 맡아 극의 한축을 형성하더니(드라마 <도시락>), 이번에는 옴니버스 음악영화 <어쿠스틱>에서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지후’ 역을 맡아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세편의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거나 ‘발전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그가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노래하다가 잠깐 쉬는 기간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지난 10월10일, 해운대에서 ‘아이돌 스타’ 아니 ‘연기자’ 임슬옹을 만났다.
-배우로 오른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는 어땠나. =굉장히 떨리더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올랐다.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원래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들었다. =아역배우 출신이다. 2AM 연습생 시절, 연기 레슨도 함께 받았다. 데뷔 뒤에도 연기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연기와 노래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배우와 가수의 구분을 두고 싶지 않다.
-영화는 처음이라 출연을 결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음악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읽어보겠다고 했다. ‘음악의 미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소리의 형태가 될 것이다’, ‘소음도 음악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등 예전에 가졌던 음악에 관한 생각들이 담겨 있더라. 영화에서 그리는 ‘미래의 음악’이 사실은 아니겠지만 한번쯤 상상할 수 있는 소재라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극중 맡은 지후는 아이돌 스타 임슬옹과 얼마나 닮았나. 전작 드라마에서 보여준 연기와 달리 편해 보이더라. =지후는 딱 ‘평범한 대학생’이다. 무대나 카메라 밖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지후처럼 연극 연습실에서 컵라면으로 한끼를 때운 적도 많았다.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돌 스타’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지후는 진희(백진희)에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게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거다. 지후가 다친 진희를 업고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영상을 보는 진희를 아무 말없이 지켜보는 장면 등 섬세한 감정을 요하는 장면은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현장에서 ‘어느 선까지 감정을 보여줄 것인가’를 항상 생각했다.
-실제로는 어떤 편인가. 왠지 능숙하게 잘 표현할 것 같다. =데뷔 초 때만 하더라도 수줍음을 많이 타고 재미없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성격이 조금씩 변하더라.
-지후처럼 기계에도 관심이 많나. =기계를 굉장히 좋아한다. 오락기나 휴대폰 등 새로 출시되는 기계는 한번씩 다뤄볼 정도다. 트위터처럼 새로운 매체에도 흥미가 많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잘 알거나 잘하는 건 아니다. 한번 다루기 시작하면 금방 빠져드는 정도다.
-배경은 SF의 근미래인데, 이를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연기하더라. =그나마 오버 연기라고 하면 폭격이 터질 때 놀라는 장면 정도? 뭐,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들거나 그러진 않고. 그냥 현실처럼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다. (내가 했던 것을) 다시 보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더라. (웃음)
-영화 찍을 때 노래하랴, 예능에 출연하랴 정신이 없었다고. =옴니버스 중 한편이라 분량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도 스케줄이 바빴다. 지후가 나쁜 일당들에게 맞고 기절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컷” 사인이 났는지도 모르고 기절한 채로 계속 잠을 자고 있더라. (웃음) 이제는 잘 만큼 잤다.
-욕심이 굉장히 많은가보다. 연기, 노래, 예능 중 어느 하나를 꼽으라는 질문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미친듯이 자학하는 성격이다. 공연에 대한 악플이 달리면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보면서 반성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연기, 노래, 예능 모두 잘하고 싶다. 물론 막무가내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내에서 최대한 잘하고 싶다는 말이다.
-첫 출연 만에 주연을 맡는 다른 아이돌 스타와 달리 단역부터 시작해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쿠스틱> 역시 주인공이긴 하지만 30분 길이의 단편영화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기 싫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기도 싫고. 조금씩 노력해서 올라가면 된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그중에서 <포화속으로>의 차승원 선배님처럼 선 굵은 남성 캐릭터를 한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