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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우울한 삶에 대한 진심어린 교감과 연대

고시촌 배경으로 한 두 영화 <불청객>과 <빗자루, 금붕어 되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

지난 9월30일, ‘신림동 고시촌’을 배경으로 하는 두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했다. 김동주 감독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와 이응일 감독의 <불청객>. 물론 이 ‘동시개봉’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하지만 단지 우연이기만 할까? 고시촌이 단지 고시생만의 공간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의 숙소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1990년대 말 IMF 이후 고시촌의 경계를 넘어서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고시원은 사실 ‘21세기형 쪽방’의 다른 이름이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낳은 이 한국적인 ‘특이한 공간’에 대해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영화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고시촌 또는 고시원은 최근의 독립단편에 자주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 중 하나다). 두 영화는 스타일과 분위기에서 ‘극과 극’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서로 다른 영화이지만 제작에서 극장 개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그 차이에 못지않은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은 어떤 공식적인 제작지원도 받지 못한 채 사재를 털어 만든 두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고, 영화제(2008 전주영화제와 2010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것을 계기로 개봉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추석 연휴와 겨울 시즌 사이의 비수기를 통해 개봉해야만 했다. ‘동시개봉’이라는 이 우연은 사회적이고 영화적인 몇 가지 요인의 결합의 산물인 것이다.

하위문화, 관객의 적극성을 이끄는 전략

<불청객>은 그 만듦새에서 자신의 ‘포스트모던’한 하위문화적 전략을 전경화하고 있다. 한 고시생의 ‘불안’과 ‘악몽’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의 전개는 지극히 즉흥적이며, 그 즉흥성은 제도화된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하위문화적 감성과 코드를 그 자원으로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즐겼을 ‘어린이 특촬물’에서부터 백수 시절 교감했을 ‘디시인사이드’풍의 비주류적인 정서와 상상력이, 감독 자신의 영화적 체험과 교양에서 비롯되는 미학적 자의식의 흔적을 덮어버릴 만큼 그렇게 전경화되어 있다. 이 영화의 즉흥성을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갑자기 등장하는 ‘우주를 떠도는 국회의사당’이다. 이 장면은 국회의원도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잉여인간’이라는 유쾌하고 통렬한 풍자가 돋보이는 장면이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내적 논리에 위배되는 문제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우주 악당 ‘포인트맨’의 입장에서 골방 백수들이 수명 구입의 대상이라면 국회의사당 내 백수들은 판매의 대상에 더 가까우며, 따라서 굳이 그들을 우주로 납치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물론 이 영화에서 이런 논리적 비정합성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것을 따지는 것은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도 아니다).

이 영화의 하위문화적 전략은 단지 그 만듦새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화에 덧붙여진 ‘80, 90년대 불법영상 추방 홍보영상’과 페이크 다큐 형식의 ‘개봉 홍보영상’은 그 미학적 전략을 더욱더 전경화하고 있고, 영화는 스스로 ‘잉여SF’임을 내세우면서 자신과 소통하고 교감할 특정한 관객을 적극적으로 호명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이 호명하고 있는 그 잠재적 관객이 적극적으로 화답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영화다. 대부분의 하위문화가 그렇듯 <불청객>의 영화적 욕망에는 미세한 균열, 또는 일종의 ‘불안정적인 동요’의 징후가 있다(‘반-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의 동요). 영화(또는 이 영화를 둘러싼 어떤 현상)에는 자신의 ‘잉여성’을 전복적으로 긍정하는 태도와 최대한 그 ‘잉여성의 흔적’을 지우려는 태도가 공존하면서 갈등한다. 여전히 과정 속에 있는 이 영화가 자신의 ‘완성’에 이르는 것은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입한 자본에 의해 ‘허접스럽지 않은 매끈한 SF’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때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될 것이며,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영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포인트맨은 ‘구입하고 판매하는 행위’를 통해 ‘지배’하려 하지만, 우주로 납치된 백수들은 ‘골방의 창(window)을 깨는’ 행위를 통해서, 그 은밀한 전파와 전염의 행위를 통해서, ‘저항’의 계기를 찾는다(80, 90년대식 저항의 상징인 ‘병’과 그 안에 들어 있는 21세기형 저항의 상징인 ‘대항-정보’의 결합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다). 나는 이 영화가 하루빨리 인터넷을 통해 좀더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전염되었으면 좋겠다. 창작 과정에서의 새로운 미학적 전략은, 그에 걸맞은 새로운 수용 형식과 문화를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리얼리즘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어

<빗자루, 금붕어 되다>에서 두드러진 것은 매우 ‘모던’해 보이는 미학적 전략, 즉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되는 시각적 스타일(CCTV 카메라의 시점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화면의 사선구도)과 주류영화의 ‘설명적 편집’을 거부하는 독특한 편집 방식이다. 특히 이 영화의 카메라는, 마치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그 고시촌 공간의 곳곳에 부착되어 있던 CCTV 카메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렇게 일관된 위치와 고정성을 보여준다(이 영화에서 동일한 공간은 언제나 동일한 시점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 일관된 시각적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왠지 두편의 서로 다른 영화를 보았다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 장필(유순웅)이 우발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살인’이 그 두 느낌의 ‘변곡점’을 이루고, 그 이전과 이후에 영화의 일관된 CCTV 카메라 시점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장필이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영화 전반부의 카메라가 철저하게 ‘객관적’이라면 살인사건 이후 그 카메라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기록과 장필의 내면에 대한 ‘주관적’ 묘사 사이를 넘나든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일관된 시각적 스타일을 통해서 전반부에 구축한 지극히 ‘리얼리즘’적인 화법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후반부의 ‘초현실’(surrealism)적 화법으로 스스로 전복시키는 역설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견 비일관적으로 보이는 이 화법은, 이 영화가 견지하고자 하는 일관된 윤리적 태도와 미학적인 전략의 산물이기도 하다.

<불청객>

이 영화의 진정한 출발점은 장필이 저지르는 그 ‘우발적 살인’이다. 영화의 중간이자 변곡점인 그 우발적 살인으로부터 시작된 영화는, 전반부를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장필의 일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로 구성하고, 후반부는 살인 이후 그의 내면에 대한 ‘주관적 묘사’로 구성함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하고 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영화의 전반부는 단지 객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카메라의 위치는 객관적이지만 그 카메라에 포착된 고시촌 풍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위와 사건은, 이미 ‘주관적’이다. 이렇게 상상해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고시촌 곳곳에 부착되어 있던 CCTV 카메라이며, 어느 날 장필의 우발적 살인을 포착하게 된다. 영화는 주류언론과 법정에서라면 장필에 대한 도덕적 심판의 무기(‘결정적 증거’)로 사용되었을 그 장면을, 과연 그를 쉽게 단죄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윤리적 질문의 수단으로 바꾸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장필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선택하고 재편집함으로써 그를 ‘변호’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장필의 인간적인 죄의식과 내밀한 욕망에까지 다가가면서 단순한 ‘연민’이 아닌 진정한 ‘교감’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선택과 재편집을 통해 애써 구축한 ‘리얼리즘적 드라마’를 후반부의 ‘초현실적’인 미학적 전략을 통해 스스로 뒤집음으로써 그 드라마가 통상적인 ‘도덕극’에 빠지는 것에 끝까지 저항한다.

두 영화의 스타일과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 <불청객>이 한 고시촌 청춘의 불안한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몽상의 영화’라면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고시촌을 자신의 마지막 주거공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 한 50대 장년의 삶을 냉정한 ‘외부’의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관찰의 영화’다. 하지만 그 서로 다른 스타일에는 ‘스타일의 전경화’를 통해 발언하겠다고 하는 공통적인 영화적이고 미학적인 태도가 함축되어 있고, 현저하게 다른 분위기 속에는 대상을 향한 어떤 공통적인 정서와 윤리적 태도가 함축되어 있다. 잉여성의 긍정, 또는 동정이 아닌 진정한 교감과 연대에의 호소.

변성찬“같은 날 개봉된, 그러나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두편의 ‘고시촌’ 영화. 그 우연의 일치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두 영화의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서 따져보고 정리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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