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액션 없이 빚어내는 숨막히는 긴장감
<루비콘> Rubicon | 출연 제임스 배지 데일, 제시카 콜린스, 알리스 하워드 / 채널 <AMC>
자동차 추격신, 드라마틱한 격투장면이 있어야만 흥미로운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루비콘>은 <매드맨> <브레이킹 배드> 등 탄탄한 구성력으로 승부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온 <AMC>의 신작 드라마다. ‘한번 건너면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강의 메시지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 작품은 장인의 죽음 뒤에 거대한 집단의 음모가 있음을 깨달은 정보 분석가가 그들에 맞서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API라는 국가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암호해독가 윌 트래버스(제임스 배지 데일)는 어느 날 주요 일간지의 십자말풀이 퍼즐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정보분석팀장인 그의 장인에게 알리지만 이를 상부에 보고한 장인은 며칠 뒤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윌은 장인이 암호로 남겨놓은 단서를 실마리로 세계의 중요한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의 존재를 어렴풋이 깨닫는다.
강직하고 무고한 개인이 견고하며 냉혹한 권력집단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루비콘>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코드네임 콘돌>로 대변되는 1970년대의 음모론영화를 닮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그들 영화가 두 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담아낼 수 없는 두뇌들의 치열한 머리싸움과 국제정치의 명암을 좀더 긴 호흡으로 그려낸다는 장점을 지녔다. 이와 더불어 하루 종일 서류 더미와 씨름하며 수백명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리는 정보 분석가들의 고뇌와 딜레마도 이야기의 한축을 차지할 예정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켄 터커는 “<루비콘>의 무시무시하게 조용한 세계에서는 사소한 순간이 엄청난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책상머리에서 비롯된 결정이 총보다 무서울 수 있다. 이것이 <루비콘>이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다.
UP 탄탄한 이야기 구성력과 적절한 캐스팅. 더불어 두뇌들의 지적 유희를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DOWN아무리 천천히 묵직하게 전개되는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4.외계인, 대통령, 그리고 미스터리
<이벤트> The Event | 출연 제이슨 리터, 사라 로에머, 로라 인스 / 채널 <NBC>
올봄 대단원의 막을 내린 <로스트> <24>, 갑작스럽게 조기 종영한 <플래시 포워드>의 부재에 마음 둘 곳 없던 이라면 <이벤트>를 주목할 것. <24>의 총괄 프로듀서 에반 카츠가 총제작을 맡은 이 작품은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그러나 사실은 미묘하게 서로 얽혀 있는 어떤 ‘사건’(이벤트)들을 조명한다. 다시 말해 시간차와 공간차, 등장인물의 이해관계가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사건과 반전을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떡밥물’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다.
사건은 크게 세 방향에서 진행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션 워커는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나는데, 방을 잠깐 비운 사이 그녀가 실종된다. 두 번째 사건은 갓 취임한 흑인 대통령 엘리아스 마르티네즈의 이야기다. 그는 사람과 똑같은 모습의 외계인들이 지구 체류 목적을 밝히지 않아 60년 넘게 이노스트랑카 산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외계인 대표와 협상을 시도한다. 마지막 사건은 산에 갇힌 외계인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그들은 어떤 음모를 계획하고 지구에 왔으며, 감금되지 않은 외계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이미 공개된 <이벤트>의 네 에피소드에서는 (워커의) 여자친구의 미스터리한 실종, 대통령 암살 시도, 정부 기관에 잠입한 외계인의 정체 폭로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벤트>의 작가 닉 와터스(그는 미스터리한 초능력자들을 다뤄 인기를 끌었던 <4400>의 각본을 썼다)는 “에피소드마다 거대한 실마리와 폭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제작진의 ‘떡밥’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벤트>는 올해 코믹콘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얻으며 “올가을 시즌 가장 유망한 신작”(<로이터>)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잦은 플래시백의 사용과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이 시청자의 인내심을 잃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벤트>가 <24>와 <플래시 포워드> 중 어느 쪽의 운명을 닮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UP 떡밥으로 경쟁하던 대작들은 모두 종영했다. 게다가 <이벤트>의 이야기는 정치·스릴러·SF를 모두 커버한다. DOWN한회 못 봤는데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가 복잡하다면…. 그건 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