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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하이브리드 단편이 온다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0-10-19

제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트레일러 현장

날씨는 촬영현장에서 종종 제 스스로 연출자가 된다. 10월11일 경기도 화성의 어섬리조트 근방에 자리한 제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트레일러 촬영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햇빛이 나면 <글래디에이터> 느낌으로 찍으려고 했는데, 흐린 날이라 아무래도 글루미한 여행이 될 것 같네요.” 트레일러 연출을 맡은 신영현 감독의 말이다. 잿빛 날씨 때문에 트레일러의 정서는 미묘하게 바뀌었지만, 다행히 흐름에는 큰 지장은 없단다. 흑백으로 촬영하기 때문이다. 그의 곁에는 오늘의 ‘여행자’ 안성기가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들고 서 있다. 마법사의 것처럼 위로 불쑥 솟은 모자를 쓰고, 체인 달린 낡은 턱시도를 입은 그는 ‘긴 여정을 마치고 또 다른 자아를 기다리는’ 노신사를 연기한다. “말하자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같은 역할이랄까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안성기는 신발끈을 풀고 모자를 벗고, 때로는 진흙 바닥에 눕고, 때로는 비눗방울을 날려야 한다. 아시아나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그에게 이런저런 모습을 주문하는 후배 감독의 연출 방식은 아버지를 대하듯 공손하다.

제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기조는 ‘하이브리드 단편영화’다. 광고, 뮤직비디오 등 영화 이외의 장르를 끌어안아 좀더 실험적인 단편들을 소개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따라 CF, 뮤직비디오 감독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메이드 바이 커머셜 디렉터스’ 부문이 올해 특별히 신설됐다. 이 부문에 <필라멘트>라는 작품을 출품한 신영현 감독 역시 제일기획 광고 프로듀서 출신이다. “제가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 트레일러를 연출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계를 뛰어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트레일러의 주제도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로 잡았습니다.” 본선에 진출한 국내외 58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아시아나영화제는 11월4일부터 9일까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