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는 얘기지만, 현실 속 드라마는 영화의 드라마를 훨씬 뛰어넘는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가 그랬고 칠레 광부 구출이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칠레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조만간 책으로 나오거나 영화화될 조짐이다. 워낙 심금 울리는 이야기라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급 휴먼드라마로 만들어진다 해도 유치하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 같다.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칠레 대통령일 것 같다. 하긴 이미 그는 생중계되는 방송 화면에 등장해 고립된 광부들의 가족들과 걱정을 나눴고 생환한 이들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인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어차피 다 쇼 아니냐고? 현대 정치의 절반 이상이 이미지를 이용한 리얼리티 쇼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칠레 대통령은 적절한 연출과 설득력있는 연기를 보인 셈이니 꼭 속았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통령이 광부를 끌어안는 모습에선 어떤 진심조차 느껴졌으니 말이다(만약 그가 그 순간 머릿속에 지지율을 떠올리고 있었다면 올해의 연기상을 줄 만하다). 문제는 연기조차 참 못하는 우리 정치인들이다.
뉴스에 이어 드라마 <대물>을 보다가 문득 ‘왜 한국에는 실존 대통령을 다루는 영화가 없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됐다. 그러고 보니 <JFK> <닉슨>처럼 대통령을 소재로 해 훌륭한 영화를 만든 올리버 스톤 감독도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한국에서 그동안 대통령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한 건 한마디로 정치환경 탓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확산됐다고는 하지만 가상의 전두환 암살사건을 다루는 <26년> 같은 영화조차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픽션이 그러할진대 논픽션 성향이 짙은 대통령 주인공 영화야 오죽하겠는가.
결국 일단 상상으로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을 영화화한다면 제목은 <아버지>로 짓고, 군주와 대통령의 중간쯤 자리에서 통치했던 그를 왕정극풍으로 그리면 좋겠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장군님> 1, 2편으로 제작하면 된다. 그들의 속성 별 늘리기 비법과 탱크로 시내를 쾌속 주행하는 장면을 담은 액션영화로 만들면 된다. 물론 결말은 통렬한 폭동신으로 마무리된다. 최규하 대통령의 <중간자>와 노태우 대통령의 <장군님3>는 왠지 흥행이 안될 전망이니 고민을 해봐야겠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생님>은 납치사건으로 시작되는 스릴러영화로 만들어 호남에서 대대적으로 시사를 열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 남자>는 그의 마지막 나날을 <라스트 데이즈> 스타일로 담아 칸영화제에 출품하면 되겠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 현재로선 <토목왕>이 유력하다. 4대강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 짓냐에 따라 <십장님>이나 <파괴자>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P.S. 인디뮤지션 오지은씨가 이번주부터 칼럼을 연재한다. 그녀의 2집 앨범 수록곡에서 따온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란 칼럼명처럼 엉뚱발랄한 일상다반사를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