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사우라의 영화를 보면 늘 눈과 귀가 즐겁다. 팔순을 바라보는 스페인의 이 노장은 1980년대 이후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나 스페인의 영혼이 담긴 춤과 음악, 예술이라는 주제를 줄기차게 탐구해왔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탱고>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에서 플라멩코, 스페인의 화가 고야,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 등을 적절히 배치하며 뛰어난 색채와 화려한 영상, 음악을 통해 자신의 화두를 던져왔다. <돈 조반니>도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영화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오페라를 쓴 시인 로렌조 다 폰테의 삶을 중심으로 다룬다. 또한 여기에 카사노바가 함께 등장, <돈 조반니>의 원작인 <돈 후안>과 함께 영화의 중요한 맥락을 이룬다. 영화는 원색의 화려한 의상, 푸른색의 차가운 색감과 노란색 계열의 따뜻한 색감의 대비가 선명하게 드러나며 시각적으로도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영화의 진행과 함께 순차적으로 만들어져가는 오페라의 향연은 관객에게 실제로 오페라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의 마지막 오페라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돈 조반니>는 바람둥이 로렌조가 꿈꾸던 여인 아네타를 만나 사랑을 성취하는 것을 중심 서사로 이끌어가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삶의 연극성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면밀하게 내재되어 있다. 전작들에서 감독은 예술을 테마로 삼으면서 예술이 만들어지는 창작의 과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에게 무대는 언제나 중요하다. 영화는 로렌조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며 ‘로렌조 다 폰테’라는 이름을 얻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면 축제에서 카사노바는 열정을 가진 것은 좋지만 어리석어서는 안된다며 로렌조에게 가면을 씌워준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그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다. 영화의 마지막, 로렌조는 카사노바에게 오페라를 쓰면서 돈 조반니로부터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하며 오페라의 결말을 그렇게 처리함으로써 자유를 얻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연극의 틈에서 강렬한 삶의 의지와 조우한다. 연극은 중요한 것이지만 연극이 중요한 이유는 삶이 그로부터 거슬러 나오기 때문이다. 삶이 연극의 무대로 역류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 삶을 향해 열리고 삶 속으로 쏟아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연극은 어디서 끝나고 삶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카를로스 사우라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