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간 축구 소녀들의 웃음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다. 신체활동에 남다른 애착(심지어 집착)을 보이는 딸내미 덕에 더 관심과 애정이 간다. 얼마 전 지소연 선수를 인터뷰하고 쓴 <한겨레> 칼럼을 보고는 심란했는데(나이트클럽과 술집이 늘어선 뒷골목 모텔이 우리의 ‘찌’가 전지훈련하며 묵는 숙소였다니, 그것도 5~6명씩 한방에서 빨래도 스스로 해가며. 게다가 “선수들이 남자를 알면 그 순간부터 망한다”는 소리를 늘어놓는 한 여자고교 감독이 막무가내로 대화에 끼어들었단다. 헉) 그 말 많은 대통령의 마무리 말씀마저 생략시키고 그룹 샤이니의 춤과 노래에 열광하는 모습은 덩달아 흥겹다.
요즘 어지간한 여자아이들은 7살만 되면 줄줄이 철봉을 한팔로 바꿔잡으며 건넌다. 내 ‘국민학교’ 시절에는 한반에 한둘, 남다른 기량을 가진 여자아이들만 가능한 재주였다. 확실히 타고난 체력은 좋아졌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근육 쓸 일은 점점 줄어 남녀 공히 절반 이상이 저질·부실 체력자가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지난해 중·고교 학생신체검사 결과 최하위 등급인 5급을 받은 학생은 열명 중 세명꼴이었고, 4급까지 합하면 절반이 넘었다. 체육도 놀이도 심지어 걷는 일조차 ‘공부시간 뺏는 일’이라서다. 각급 학교가 교과별 수업시수를 20% 증감할 수 있도록 한 새 교육과정 고시로 체육수업은 영어, 수학에 점점 더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대로라면 ‘성인병이 국격을 낮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이들이 커서까지 이 세력이 집권하는 일은 없겠지? 제발). 그렇다고 생활 체육이나 엘리트 체육의 저변이 넓거나 인프라가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선수들은 어찌 이리 국제 성적이 좋을까.
아마도 ‘운동’이 부모의 뒷배나 자본의 개입 없이도 타고난 재능과 노력만으로 일정 정도 공정한 경쟁과 성취가 가능한, 현재로서는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 아닐까. 입시 영역으로 가면 여전히 구린내가 나지만, 우리에게는 무수한 ‘롯데 이대호들’이 있다. ‘공정사회’, 아니 적어도 ‘인간사회’의 교육은 그래서 지(智)·덕(德)·체(體)가 아닌 체덕지로 불려야 마땅하다.
부디 우리의 아이들이 김치 많이 먹고 운동 많이 했으면 좋겠다. 4대강 사업으로 배추밭을 빼앗긴 농민들도, 수요가 급등한 잔디를 키우느라 배추농사를 접은 농민들도 그걸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