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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영화냐 야구냐. 부산, 그것이 문제로다
문석 2010-10-04

해마다 부산영화제 시즌이 되면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제의 행사와 영화를 볼까,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을 즐길까, 라는 딜레마 말이다. 어차피 일 때문에 부산에 내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지만 그때마다 어두운 극장이나 침침한 사무실을 벗어나 시원한 야구장에서 악악대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오른다. 딱히 야구팬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 괜히 집적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평소 중계방송 한번 하지 않던 공중파 방송사들이 포스트 시즌 때만 되면 슬그머니 숟가락을 올려놓듯 뜨거운 ‘가을야구’의 열기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롯데 자이언츠가 3년째 포스트 시즌에 참가하는 것도 그 충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산이 어떤 도시인가. 야구에 죽고사는 야도(野都) 아닌가. 개인적으로 1992년 여름 사직구장에서 접한 광기에 가까운 부산의 야구 열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동안 그나마 야구에 대한 욕망에 크게 휘둘리지 않았던 것은 롯데가 준플레이오프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 롯데가 플레이오프에 오른다면 경기 일정이 영화제 기간과 겹치게 된다. 부산인들의 뜨거운 가슴은 해운대보다 사직으로 향할 것이고 야구를 향한 내 충동 또한 거세질 것 같다(그래서 영화제 관계자들은 내심 롯데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를 기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부산영화제와 포스트 시즌은 비슷한 면이 있다. 예매 창구를 열자마자 수분 내에 표를 증발시키고 객석을 꽉꽉 채우는 관객의 후끈한 열정이나 평소 접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경기/영화(간혹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교훈을 얻을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드레날린을 극한으로 고양시키는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는 점까지.

충동은 충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게 마련. 롯데가 올라가든 그렇지 못하든, 올해도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포스트 시즌은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즐기게 될 전망이다. 만약 충동적으로 사직구장에 갔다간 이다혜 기자가 김복남에게서 빌린 낫을 휘두르며 쫓아올 게 뻔하니까. 영화제에 가서 영화는 거의 보지 못하고 일만 죽도록 하게 되는 우리 같은 사람들로선 야구라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돼주길 바라게 된다. 그러니 여러분이라도 영화제와 야구 모두 생생하게 즐기기를 기원한다.

물론 우리는 영화제와 야구 모두 엄청난 예매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 치열한 승부에서 패배한 분들께는 이번주 <씨네21> 부산영화제 특집기사와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씨네21>에서 발행하게 될 데일리를 권한다. 영화는 그렇게 지면으로나마 즐기고(야구는 지면 특성상 담을 수 없으니 기자들의 트위터를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흥겨운 축제에 동참하면 된다. 혹시 아나? 밤마다 해운대의 횟집과 술집을 순회하는 영화인들과 합석하게 될지. 그렇게 모두를 하나로 묶어줄 축제는 이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