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집행위원장이 올해 행사를 끝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난다. 9월7일 15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김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사퇴를 공식화했다. 1996년 이용관, 김지석, 전양준 등 당시 영화과 교수들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든 지 꼭 15년 만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당시 “한국영화가 위기인데 번지르르한 국제영화제가 무슨 필요냐”는 영화계 안팎의 비아냥을 김 집행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는 보란 듯이 뒤집었다. 한국의 젊은 감독들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해외영화계를 향한 교두보가 됐고, 아시아의 패기 넘치는 재능들에게는 튼튼한 보호막으로 기능했다. 지난 15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가 일군 성과는 또 다른 문화적 중심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서양의 영화인들에게 각인시켰던 대사건이기도 했다.
영화제전용관 등이 포함된 부산영상센터 ‘두레라움’ 완공을 1년 앞두고 자리에서 물러날 김 집행위원장은 이전에도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2005년 10회 영화제, 2007년 12회 영화제를 앞두고 그는 제2의 영화제 도약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날 뜻을 여러 번 비쳤다. 하지만 그때마다 영화인들이 가로막았다. 김 집행위원장이 없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화를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건 비단 영화제 스탭들만이 아니었다. 이젠 좀 쉬면서 즐기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결국 5년 뒤로 유예됐고, 지금도 그의 퇴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영화인들은 많지 않다. 1988년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의 포탄을 맞으며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영화인들 앞에 선 그의 시작은 미미했으나, 20여년 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부상해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는 그의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마침표다.
이러한 반전은 그러나 흉내내기조차 어려운, 불가능한 개인의 자질이기도 하다. 적까지 친구로 만드는 그의 놀라운 융화력과 그가 한국영화에 보여준 열정과 성실의 순간을 사람들은 그래서 흔히 전설이라 부른다. 김 집행위원장이 ‘미스터 킴’에서 ‘마스터 킴’으로 올라서기까지의 숱한 전설을 파헤치기 위해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어로 나섰다. 마스터 킴의 전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15인의 국내외 영화인들도 아쉬움을 담은 음성을 전해왔다. 해외영화제를 돌며 ‘한국영화의 외교관’이라고 불렸던 김 집행위원장이 직접 전해주는 해외영화제 에피소드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종횡무진하던 김 위원장의 모습을 한데 묶어 담았다. 이 특집기사는 전설의 마스터 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는 약소하기 짝이 없으나 그외엔 별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내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