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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삶과 사회에 대한 초상화 <빗자루,금붕어 되다>
주성철 2010-09-29

가진 것 없는 중년 남자 장필(유순웅)은 신림동 고시촌의 한 허름한 방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포스터 붙이기, 폐품 수집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정성껏 목각인형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어느 날, 같은 고시원에 사는 청년(김재록)에게 돈을 빌려주지만 도박에 빠져 있는 그에게 돈을 받아내기란 힘들다. 게다가 그에게 고시원 총무 자리마저 뺏긴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장필은 우연히 만난 동네 여자에게 불과 몇 만원의 사기까지 당하면서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 여자가 누군가 내다버린 모니터를 마치 중고 상품인 양 속여서 장필에게 되팔았던 것이다.

시작부터 <빗자루, 금붕어 되다>라는 제목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 이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나 소품이라기보다 영화를 다 보고났을 때 그저 해석의 단초 중 하나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빗자루라는 무생물이 금붕어 같은 생명을 얻는다고 해봐야 어항 속에 갇혀 살아갈 뿐이다.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비로소 어항 바깥 세상에 대해 어렴풋이 인지한다. 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이 각박한 사회는 개인에게 자유나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시 고시원의 좁은 방으로 회귀하게 될 뿐.

꾸역꾸역 일어나 주전자에 요강처럼 소변을 보고, 공동 세면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남의 비누를 쓰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자신의 방을 빌려주기도 하고, 하여간 참 다들 힘들게 살아간다. 살인도 물론 절실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벌어지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과 몇 만원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게 모두 상처를 주고받으며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얼핏 하층민의 삶을 담아낸 작품처럼 여겨지지만 결국 이것은 기적이라고는 당최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삶과 사회에 대한 초상화다.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정말 집요하게 인물과 사건을 그저 바라만 본다. 방 안의 불상이나 금붕어 어항을 인서트 컷으로 담아낼 법도 한데 그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 그 고집은 대단하다. 살인의 전과 이후, 김동주 감독은 그저 스산한 공기와 분위기만 담아낸다. 그리고 무심히 이어지는 모텔장면과 야산장면.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법도 한 사건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광경으로 펼쳐진다.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형식만으로도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비루하고 찝찝하고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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