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예산의 홈무비가 기적처럼 대중을 만나는 사건이 드물게 일어나곤 한다. 2010년의 기적은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며 극소수의 컬트팬을 만든 뒤 마침내 개봉하는 초저예산 SF영화 <불청객>이다. 만년 고시생 진식(김진식)과 두 백수인 응일(이응일), 강영(원강영)이 사는 신림동 고시촌 자취방에 갑자기 택배 상자가 떨어진다. 세 사람이 상자를 열자마자 온몸이 시커먼 외계인 포인트맨(이응일)이 나타난다. 그는 은하연방 론리스타 수명은행과 세 백수의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말한다. 포인트맨은 주인공들 같은 루저들의 생명을 적립해 늙은 거부들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불한당이다. 주인공들이 계약을 거부하자 포인트맨은 그들의 자취방을 통째로 우주로 날려보낸다. 이제 세명의 백수는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불청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88만원 세대에게 바치는 SF 어드벤처’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세 고시 백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국적(이 경우에는 ‘다은하계적’) 기업의 착취가 일상화된 자본주의 구조의 희생자로 전락하는 신세가 된다. 아무런 삶의 의욕도 없던 히키코모리 백수들이 미숫가루를 나눠 마시며 포인트맨의 계약에 맞서는 <불청객>의 이야기는 88만원 세대의 낙오자들에게 바치는 정치적인 우화에 가깝다. 그러나 심각할 필요는 없다. 신예 이응일 감독은 심각하게 현실을 진단하는 대신 일본 만화가 후루야 미노루를 연상시키는 풍자정신으로 주제를 북돋운다. 특히 <불청객>에는 관객을 뒤로 자빠지게 할 만한 코미디 시퀀스들이 가득하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를 리코더로 불어젖히며 우주를 떠다니는 다른 백수들과 의사소통을 하거나, 국회의사당이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장면은 올해 한국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코미디 장면 중 하나라고 치켜세울 만하다.
<불청객>은 은하계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기분 좋은 충무로의 불청객이다. 물론 2천만원이라는 예산의 한계 때문에 특수효과는 대단히 거칠고 조야하다. 그러나 이응일 감독은 거의 본능적인 코미디 감각과 시대정신을 단단히 결합하는 재주를 통해 블루 스크린의 조악한 이음새마저 영화적 재미로 치환해낸다. 전례없는 SF 홈무비 <불청객>은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