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 전에>로 주목을 모았던 성지혜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유명 화랑의 큐레이터로 일하고 초원의 한 마리 들짐승을 꿈꾸는 나머지 술에 취하면 냅다 뛰기도 잘하는, 엉뚱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남자 종훈(김영호)이 주인공이다. 그가 여자들의 주위를 맴돈다. 부산에 일 때문에 내려가서는 오랜만에 후배 은주(윤주희)에게 연락을 한다. 간호사로 일하는 은주와 종훈은 곧장 사랑에 빠진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좀 불편한 관계에 접어든 옛 연인 선영(황인영)에게 “나 여자 생겼다”고 말하고 완전한 이별을 선언한다. 한편으로는 화랑에서 만난 신인 화가에게 호감을 갖는다. 하지만 결혼은 예정대로 은주와 한다. 파국의 징조는 이미 여럿이다. 결혼 전 내내 갈등하는 것 같더니 종훈과 은주는 신혼여행 때부터 삐걱거린다. 둘이 얼마나 다른 ‘종’(種)인지 다소 코믹한 내레이션으로 잘 설명된다. 종훈은 광활한 초원과 계곡 사이를 날뛰며 활보하고 싶어 하지만 은주는 평온함이 깃든 바다의 저녁 노을을 맞으며 와인 한잔과 함께 세련되게 쉬고 싶다. 둘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한다.
<여덟 번의 감정>이라면 그건 주인공 종훈의 감정의 변화를 말하는 것 같다. 그의 구애담은 충동적인데다 심지가 깊지도 못해 여자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느라 바쁘다. 그런 그의 감정의 변화를 반영하며 완성하다 보니 그 남자의 심리가 뒤집힐 때마다 영화는 간간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좀 이상하다. 예측컨대 이 영화에는 단순한 구애담 이상의 가능성이 내장되어 있었거나 반영되지 못한 그 가능성들이 오히려 더 목표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구애담 아래로 온순하게 들어가자 가능했던 그 나머지가 빛을 잃었다. 어느 수컷의 연애 해프닝에만 지나치게 쏠려 있다. 전반적으로 인물의 정서, 대사의 느낌, 화면의 어떤 특정한 앵글이 기존의 유명한 선배감독을 지나치게 많이 떠올리게 하는 것도 감상에 방해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