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강병진의 판.판.판.] 개봉하고 수익나면 준다는 거짓말
강병진 2010-09-27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영화산업 임금체불 현황 발표

<씨네21 최성열>

지난 9월16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2010년 영화산업 임금체불 현황을 발표했다. 추석연휴를 앞둔 시점이라 1쪽 분량의 보도자료가 상당히 안타깝게 보였다. 대부분의 스탭들이 받아야 할 임금은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인데, 많은 스탭들이 4, 5년 넘게 기다려도 받지 못해 결국 영화인 신문고에 신고한 돈이라고 한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절실한 돈이라는 얘기다.

지난 2004년부터 영화인 신문고를 통해 신고된 사건 가운데 해결된 비율은 50% 정도다. 영화산업노조의 입장에서 완전한 해결은 체불된 모든 임금을 받아내는 것인데, 이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그외에는 받아야 할 임금의 일부분만 받는 걸로 합의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임금을 포기하고 사건이 종결된 경우도 있다. 노동부의 진정이 있다고 해도 사업주의 지급의사나 돈이 없다면 체불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인 신문고를 담당하고 있는 이대훈 국장은 “형사처벌로 교도소에 간 분도 있다”고 말했다. “스탭들 입장에서 볼 때 작품당 3개월에서 1년 정도 일한다. 빨리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소송을 걸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도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일을 하기가 어려운 거다. 게다가 대부분 받아야 할 돈이 변호사 수임료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돈을 받고 싶어도 견디는 게 어렵기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영화산업노조쪽은 임금체불에도 피해를 감수하거나 무작정 기다리는 스탭 수가 전체의 약 80%에 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산해보자면 신문고에 접수된 체불인원의 약 3배수에 해당하는 스탭들이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고 있다.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평균 체불액과 체불인원은 2009년 들어 평균 체불액이 전년대비 57%, 체불인원은 172% 증가했다. 2010년의 경우는 2009년보다 다소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10월 이후로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대훈 국장은 “보도자료를 발표한 뒤에도 3건의 사례가 접수됐다”고 말했다. 접수된 사례 중에는 단지 임금체불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도 있다. 모 영화의 경우, 감독의 심한 욕설과 폭언이 문제가 돼 스탭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도, 제작사는 오히려 스탭 교체에 따른 비용을 운운하며 일한 기간의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 시기 임금체불사건의 증가는 역시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 2008년 하반기부터 영화 분야 투자가 경색되면서 제작비를 완전히 갖추고 제작에 들어가는 사례가 줄었다. 일부분을 투자받은 뒤 촬영을 시작하고 이때 만들어진 결과물로 또 투자를 받는데, 결론적으로 투자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현금’으로 지불되는 스탭 인건비와 후반작업비가 일단 프로덕션 비용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대한 국장은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스탭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개봉해서 수익이 나면 주겠다’였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스탭에게 제작비를 투자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 좋아 투자지, 사실상 임금을 빙자해서 강제하고 있는 거다.” 이런 영화들 가운데 어떤 작품은 제작사 대표가 개봉하기를 포기한 경우도 더러 있다. 10년 넘게 일했던 한 스탭은 1년 반 동안 끌었던 소송을 이겨놓고도 임금을 받지 못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다가 영화계를 떠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임금을 체불시킨 당사자들이 분명 명절이라고 해서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몇년씩 받지 못한 임금을 기다리고 있는 스탭들에게 이번 명절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지 않을까? 돈 없는 명절은 서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