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도중 쉬가 마렵다는 아이를 아이아빠가 공중화장실에 데려간 사이 낮은 화장실 담 안쪽으로 얼핏 한 남자를 보았다. 짙은 머리숱, 비교적 큰 키, 각진 어깨…. 음, 실루엣 괜찮은 남자군 했는데 다시 보니 내 아이아빠였다. 헐.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 언젠가 누구를 간절하게 원하고 간절하게 만들었던 이들이다. 성묘 길 고향 동네 할머니가 시아버지를 보고는 살짝 당황하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도 뜨거원던 시절, 로맨틱한 계절이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지역을 돌며 유세에 한창이다. 일부 후보자가 부유세 도입을 내걸었거나 찬성했다. 그동안 부동산이며 금융이며 가진 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세제 다 양보해주시던 분들이 갑자기 왜. 셋 중 하나다. 1. 선생님의 ‘팬심’이라도 얻고 싶어서(부유세 저작권은 1971년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에게 있음.) 2. 이참에 왼쪽으로 더 가(는 것으로 보이)고 싶어서, 아니 최소한 중간은 하고 싶어서. 3. 딴 거 내세울 게 없어서. 범죄인 총리·장관을 막아 간만에 밥값했다는 소리를 듣는 시기에 치르는 지도부 선출인데, 다시 보면 다시 보게 되는 사람이… 안 보인다. 차라리 웃통 벗고 수박 먹는 선생님의 미공개 사진에 더 오래 눈길이 머문다. 웬 계파싸움에 나눠먹기는 이리 횡행할까. 먹을 게 너무 없어서 더 그런가. 저마다 대장을 해야 직성이 풀려서 그런가. 부디 ‘유지’를 받들기는커녕 ‘유산’을 놓고 다투는 꼴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그 집안 진짜 볼장 다 본 거다. 차라리 대통령이 총리를 겸직해 인사청문회를 거치라는 소리를 듣는 나라에서, 단군 이래 최대 약체 소리를 듣는 제1야당이 그나마 남은 재산과 집기를 놓고 다투는 꼴을 보는 건 국민의 한명으로서 내가 너무 불쌍하잖니.
어쨌든 난 박지원 아저씨에게 한표. 아참, 아저씨는 출마 안 했지. 요즘 민주당에서 아저씨밖에 안 보이는 관계로 잠시 헛갈렸다. 아저씨는 원내대표니까 당연직으로 지도부에 속한다. 곧 일흔을 앞둔 사람이 40대들보다 더 민첩하고 정력적으로 보이는 건 그가 젊어서겠지, 설마 40대들이 늙어서겠어? 무엇보다 그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으로 보인다. 가장 유능한 점은 자기 그릇의 크기를 스스로 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로맨스도 할 수 있다. 민주당의 발정, 아니 발전을 기대한다. 더 늦기 전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