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과는 어떤 인연인가. =내가 계속 쫓아다닌 입장? (웃음) 제대하고 <아라한 장풍대작전> 연출부 막내로 들어갔고 <주먹이 운다>는 못하고 복학을 했다. 그리고 <짝패>를 했다. 당시 류 감독님이 준비하던 <야차>에 1년 반 정도 매달렸는데 결국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고 다시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조감독을 했다. 그러면서 입봉 제의를 받았는데 자신의 시나리오를 흔쾌히 내주신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이후 <해운대> 각색 작업에 참여하며 다른 영화사에서 일해보니 좀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책임감 측면에서 말이다. 그렇게 3년을 준비했다. <단편 손자병법>으로 미쟝센단편영화제 ‘4만번의 구타’ 최우수상을 받은 건 <야차>를 준비하며 휴학 중이던 때였다.
-<공공의 적> 시리즈 등으로 설경구는 이미 경찰 이미지가 잡혀 있는 배우 중 하나다. 그를 전직 경찰로 설정하면서 목표로 삼은 건 뭔가. =‘강철중’이 국민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한국적 강력계 형사 캐릭터의 모델이자 그야말로 ‘한국의 존 맥클레인’이다. 거기서 좀 색다른 변주를 하고 싶었고 마침 경구 형도 그 생각에 동의하며 반보만 앞서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거기에는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도 있지만 <리쎌 웨폰>의 멜 깁슨도 있고 <중안조>의 성룡도 있고 <돌아이>의 전영록도 있고, 또 내가 좋아하는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도 있고 그가 영향받은 <우주해적 코브라>의 코브라도 있다. 이거 너무 많은가? (웃음) 암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도 매력적이지마 기본적으로 여유롭고 낙천적이고 어딘가 불량식품스런 매력을 풍기는 남자주인공들을 좋아한다. 설경구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경구 형이 처음부터 캐스팅에 OK한 건 아닌데 나중에 결정하고는 (휴대폰을 보여주며) “졸라리 뛰어보자. 후회하지 않게”라는 문자를 보내와서 정말 큰 힘이 됐다.
-독특한 점은 이른바 ‘류승완 사단’으로 분류될 만한 배우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경구를 변화시키자!’ 라는 첫째 목표로부터 출발해 설경구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배우들로 섭외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나 역시 류 감독님 영화에 계속 참여했던 사람이니 임원희, 김수현, 안길강, 류승범 같은 배우들과 하면 편하지만 그런 식으로 변화의 자극을 주고 싶었다. 오달수는 <그놈 목소리>에서 김영철씨가 연기한 형사 캐릭터 물망에 오르기도 했던 배우인데 누군가가 ‘오달수 어때?’ 그랬을 때 딱 ‘촉’이 왔다. (웃음) 그리고 송새벽은 <방자전>을 함께 촬영 중이던 승범이가 추천했다. 그땐 <마더> 외에는 알려진 게 없는 배우라 의아해하면서도 오직 류승범의 추천만 신뢰했다. 나중에 <방자전> 보면서 ‘빙고!’를 외쳤다. 오달수, 이성민, 송새벽 세분에게 지속적으로 환기시킨 것은 ‘빈도’가 아니라 ‘밀도’라는 점이었다. 묘하게 연결되는 캐스팅이 있다면 경구 형의 딸로 나오는 김향기가 <웨딩드레스>에서 송윤아씨의 딸로 나왔다는 점이다. (웃음)
-추석영화로 전환되면서 애초의 시나리오에서 어떻게 바뀌게 됐나. =류 감독님의 원안은 인물들이 시스템에 의해 작살나는 영화였다. 뭔가 미해결로 남겨지는 부분들도 있고. 전형적인 ‘도시 누아르’ 영화였는데 대폭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추석이라 15세 관람가로 맞추자는 목표가 있으니 액션 강도도 조정해야 했다.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딸도 생겼고 맛깔 나는 조연의 비중도 늘어났다. 애초 예상한 예산 규모도 줄여야 해서 굉장히 빠듯하게 작업했다. 그런데 워낙 로케이션 촬영도 많은 영화라 보충이나 재촬영은 꿈도 못 꾸고 달렸다. 신인감독으로서 그런 점들을 챙기면서 가는 게 고충이었고 스탭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보통 지방촬영 하면서 촬영팀이 일정기간 모텔 하나를 통째로 쓰면 술 때문에 경찰이 오거나 응급실에 가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정말 우리는 하루하루 고된 나머지 숙소에서 쓰러져 잠자는 것밖에 하질 않았으니 나중에 모텔 주인아주머니가 이렇게 얌전한 촬영팀은 처음이라며 정말 고맙다고 하시더라. (웃음)
-영화 속 액션에 대해 얘기해준다면? 인물들의 격투신보다는 후반부 카체이스 신이 보다 비중있게 연출된 느낌이다. =사실 아주 비싼 차도 없는데 카체이스 신이 좋다고 하면 좀 민망하다. (웃음) 역시 회차가 부족해서 아쉽긴 했지만 <불리트>나 <프렌치 커넥션>, 그리고 <레드 히트>처럼 올드하게 가보자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멋진 드리프트나 기어 변속 같은 게 아니라 박력있게 부딪히고 뒹구는 느낌으로 갔다. 전체적으로 ‘후까시’ 잡는 정교한 느낌보다 액션이든 캐릭터든 군더더기 남기지 않고 시원스럽게 연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