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겁내지 않았어. 내가 총을 쐈을 때 겁내지 않았다고.” <아저씨>를 통틀어 킬러 람로완의 가장 긴 대사는 저 문장뿐이다. 그것도 전당포 주인 태식(원빈)과 처음 대면한 뒤, 심상치 않은 적수를 만났다는 본능적인 직감과 긴장을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이다. 어쩌면 무척 닮았을 두 남자, 세상천지에 홀로 남은 어린 소녀 소미(김새론)에 대한 연민으로 타인과의 가느다란 교감을 가까스로 유지하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순식간에 짐승처럼 타인을 물어뜯을 수 있는 그런 타입. 낯선 국적, 낯선 얼굴이었지만 태식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감으로 킬러 람로완은 <아저씨>에 등장하는 순간마다 스크린을 장악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던 그 남자, 지난 9월3일 <아저씨> 관객 500만 돌파를 기념하여 방한한 타이 배우 타나용 웡트라쿨을 만났다.
-<아저씨>의 500만 관객 흥행을 축하한다. 그 때문에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됐으니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처음엔 정말 놀랐다. <아저씨>가 이렇게까지 흥행에 성공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뻤고, 그 덕분에 <아저씨> 팬들을 만나러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됐으니 즐거울 따름이다.
-<아저씨> 개봉 이후 당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팬의 방문이 급증했다고 알고 있다. 친구 신청도 잘 받아준다고 하던데. (웃음) 그만큼 당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의 열망이 큰 것 같다.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부탁한다. =음,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까…. 한마디로 난 편안한 남자다! (웃음) 17살에 패션쇼 모델로 무대에 섰고, 그 이후 드라마로 옮겨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액션과 드라마를 주로 했고, 코미디도 몇편 출연했다.
-<아저씨> 이전에 사카모토 준지의 <어둠의 아이들>에도 출연했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어둠의 아이들>도 <아저씨>만큼 무거운 주제, 아동학대와 장기매매에 관한 작품이라 출연배우 모두 굉장한 책임감을 갖고 연기했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어둠의 아이들>은 나의 첫 번째 해외영화다. 일본 촬영분을 먼저 찍은 다음 타이 배우를 찾는 와중에 나의 전작을 본 캐스팅 담당자가 <어둠의 아이들> 속 캐릭터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연락했다. 나도 영화가 묘사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갖고 시작했다.
-<아저씨>는 한국에서 한국 스탭과 함께, <어둠의 아이들>은 타이에서 일본 스탭과 함께 일했다. 해외 영화 두편을 경험하며 어떤 차이점을 느꼈나. =양국 스탭의 다른 점은 잘 모르겠다. <아저씨>에 한정지어 말하자면, 감독님 이하 모든 배우와 스탭들이 가족처럼 커뮤니케이션하며 서로 편안하고 재밌게 촬영하는 모습이 좋았다. 타이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100%를 꽉 채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내 눈에도 똑똑히 보였고, 그런 분들과 작업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아저씨>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타이의 에이전시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한국영화에 출연할 생각이 있냐고 하더라. 관심있다고 답했고, 조직원의 액션 연기를 짧게 촬영한 비디오를 찍어 한국으로 보냈다. 이정범 감독님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한국에 와서 만났는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감독님이 나의 어떤 점을 보고 좋아한 건지 잘 몰라서 의아해했다. (웃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감독님은 비디오 속 내 눈빛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고 말하더라.
-람로완이라는 캐릭터의 첫인상은 어땠나. =깜짝 놀랐다. 내가 과연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곧이어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다. 영어 시나리오를 받아 타이로 돌아가 열심히 읽고 준비했다.
-람로완은 대사가 거의 없다. 대신 표정과 액션을 비롯한 몸동작만으로 자기 성격을 설명해야 한다. 이 역을 준비하면서 신경을 가장 많이 쓴 부분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소미가 내 이마에 밴드를 붙여주는 장면이다. 람로완이 그 순간 감정을 가장 많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처음에 감독님이 람로완에 대해 “악인이지만 전적으로 악하지만은 않다. 착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착한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해줬다. 람로완을 이해할 때 감독님의 설명을 중심에 두고 파악했다.
-액션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예전의 액션 연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한국과 타이 액션은 몸놀림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무술감독님이 내 움직임을 관찰하고 람로완의 캐릭터에 맞는 액션장면을 많이 조정해줬다. 정말 훌륭한 분인 것 같다. (웃음) 첫 번째 액션신이 클럽 화장실에서 태식과 맞닥뜨리는 장면이었는데, 많은 컷을 찍었다. 워낙 중요한 장면인 걸 아니까 나도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다. ‘난 진짜 조직원이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렇다면 화장실 장면과 마지막 집단 액션 장면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힘들었나. =촬영할 땐 화장실 신이 더 힘들었다. 촬영 전에도, 현장에서도 원빈과 합을 많이 맞춰야 했다.
-태식과 소미 모두와 중요한 교감을 나눠야 하는 역할이었다. =소미와 함께 있으면 람로완의 마음속 좋은 면이 분출하려고 하지만 그걸 억눌러야 한다. 소미 엄마를 고문할 때 소미 눈을 가려주는 장면에서도, 이 소녀가 너무 불쌍하지만 임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아픈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태식에 대해서는 일단 첫 만남부터 ‘적수다, 싸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한겨울에 촬영하면서 고생이 많았겠다. =(고개를 열렬하게 끄덕이며) 정말! 추웠다. 타이는 이렇게까지 춥지 않다. 첫 촬영이 부산이었는데, 한국 첫 방문부터 강추위를 접하니 계속 몸이 안 좋았다. 고맙게도 스탭들이 내 몸 여기저기에 핫팩을 붙여줘서 차츰 적응할 수 있었다. 그때 눈이 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독님, 스탭들과 눈싸움도 했다. (웃음)
-<아저씨>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역시 액션장면들이다. 내가 죽는 장면을 찍을 땐 진심으로 통증을 느끼며 즐겁게 연기했다. (웃음)
-한국에서 타이영화는 양극단으로 갈려서 소개되는 편이다. 극장가에선 액션과 공포영화를, 영화제에선 펜엑 라타나루앙이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같은 아트하우스 감독들의 영화를 볼 수 있다. 지금 타이영화계의 현주소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요즘은 액션영화가 별로 없다. 로맨틱코미디 혹은 코미디가 대세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지금 타이에서 드라마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사극이다.
-<아저씨> 무대 인사를 앞두고 있다. 한국 팬들의 극성맞은 환영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웃음) =너무 긴장된다. (웃음) 분위기가 타이와 많이 다른 것 같다. 타이에선 아직 <아저씨>에 대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서 실감을 못하고 있다. 타이의 원빈 팬클럽 중심으로만 소식이 전해지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