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딱하고 한심한 족속은 묻지도 않았는데 부모의 지위와 재력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이들이다. 그건 곧 부모가 그러하니 자신도 그렇게 대접해달란 속내다. 어휴. 내가 지금 당신 부모랑 사귀거나 업무하거나 거래하니? 하긴 멀쩡한 자식 캥거루 만드는 부모들의 행실을 보면 이런 자식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회사 다닐 때 “우리 애 왜 허구한 날 야근시키냐”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댁의 애님이 일을 워낙 못해서요”라고 답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회사에서는 늘 일찍 나가는데 무슨 일일까요?”(‘만날 놀다 집에 가나봅니다’란 뜻)라고 응대했다. 대학에서 일하는 지인은 “학점 때문에 엄마가 전화하는 일은 비일비재고, 촌지 들고 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휴. 배 터질라. 캥거루는 그래도 남에게 해는 안 끼친다. 남의 자식 자리와 기회를 뺏어 내 자식에게 주는 건 흡혈과도 같은 짓이다(여기서, 동물피로 연명하는 뱀파이어계의 채식주의자 샤방샤방 컬렌 가족은 예외로 하지요).
특채가 특별채용이 아니라 특혜채용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바꿔주고 옷을 벗은 장관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수십년 외무부에서 일하는 동안 늘 봐왔던 일이니까. 탈락하고도 편법과 꼼수로 다시 채용돼 이미 채용된 사람들을 밀어내고 좋은 자리 꿰찬 전직 대사 자녀들도 있지 않은가. 단 한명 뽑는다면 자기 딸이 적임이라고 굳게 믿었겠지. 아, 순서가 바뀌었다. 행정안전부 감사 결과, 모집 시기부터 응시 자격, 면접 및 심사까지 전 과정이 그 딸을 위해 만들어낸 맞춤형 특채였다. 아비가 차관 시절에는 여럿 중 한명으로 뽑혀 일했으나 장관인 이상 단독으로 자리를 주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아비 곁에 머무는 딸을 두었으니 “민주당 찍은 젊은 애들”에게 그렇게 적대감이 생겼을 수도. 제 자식 힘들게 사법시험 보게 둔 천정배 의원 같은 이가 “미친 새끼”로 보였을 만도.
외교부가 왜 로열 패밀리로 불리는지 명확히 알리고 사건은 일단락됐으나, 줄줄이 사탕처럼 중앙정부, 지방정부, 의회, 산하기관, 방계기관, 사돈의 팔촌 기관 할 것 없이 제 자식 앉히기 작태들이 터져나온다. 이런 세습주의자들에게 ‘니가 가라, 북한’이라는 말보다 더 맞는 말은 없겠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 기조’마저 스스로 속수무책 배반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태풍이 크고 작게 휩쓸고 간 뒤 어느 틈에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