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몸의 작용이다. 그래서 숨기기 힘들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살인귀 경철(최민식)의 친구 살인귀(최무성)가 손에 꽂힌 칼을 뽑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는 “뽕!”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칼자루만 뽑히고 만다. 나도 모르게 푸하핫 웃음을 터뜨렸다가 이어지는 장면에 다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 장면에서 왜 그렇게 자지러지게 웃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극도로 긴장하고 칼부림 장면을 지켜보다가 난데없이 터진 엉뚱한 상황에 웃음을 터뜨리는 일, 일종의 흥분 상태는 아니었을까. 그쯤 생각이 닿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웃음과 섹스를 한데 넣고 끓인 이야기를 모은 책이 바로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와이담도 이런 와이담이 없다.
가장 범상한 수준의 이야기 ‘남씨와 신씨의 문답’은 이렇다.
남(南)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신(辛)씨 성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며 말했다. “자네의 성은 서다(立)와 십(十)으로 되었으니 잠자리를 할 때 서서 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신씨 성을 가진 사람이 대꾸하였다. “자네가 십(十)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서서 그 짓을 한다네.”
남녀간에 ‘횟수’에 대한 정의가 달라 생긴 마찰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늘 밤에는 반드시 수십번 할 것이오”라고 호언장담한 뒤 ‘한번 나아갔다가 한번 물러나는 것으로 숫자를 세어 계산하는’ 남편과, ‘왼쪽은 송곳처럼 찌르고 오른쪽은 몽둥이처럼 쳐야지요… 이렇게 수백번을 뽑아낸 연후에야 두 사람의 마음은 무르녹고… 이렇게 한 후, 두 사람이 깨끗하게 씻은 뒤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아내의 공방전. 제목부터가 굵직한 ‘원컨대 좆이 되소서’는, 세상 많고 많은 만물 중에 “죽고자 하면 죽고 살고자 하면 사는” 존재가 되라는 축원을 시아버지에게 바치는 막내며느리의 이야기. 젊은 첩과 일을 치른 뒤 “너 또한 좋더냐?” 하고 말문을 띄웠다가 “사슴 가죽으로 된 좆으로 일을 치렀으니 반드시 사슴을 낳겠지요”라는 대답을 듣는 한 노인의 이야기도 있다.
성에 관한 우스갯소리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얻게 마련이지만, 어떤 이야기가 우스운 이야기라고 인정받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면 그 사회의 특성이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은 문학동네에서 펴낸 ‘한국 고전 문학 선집’ 중 한권으로, 11권의 패설집에 전하는 234편의 성 이야기를 현대어로 풀이해놓았다. 이 시리즈 중에는 <전우치전>도 포함되어 있는데, 전우치의 작업기술(미모의 여인으로 둔갑한 여우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이 수준급이다. “내년 봄에 운좋게 과거에 급제한다면 혼인할 수 있을까 바라고 있었는데, 오늘밤에 낭자를 만나니 이 또한 연분이라. 원하건대 우리 둘이 인연을 맺어 백년동락함이 어떻겠소?”라고 한 뒤 합환주를 권하고 또 권하게 해 취하게 만드는 작전. 이런 혼인빙자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