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과 악어가 나를 쫓아왔다. 주름투성이 괴물들이 내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다. 어떤 밤에는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린 그 학생 꿈을 꾸기도 했다. 뻔한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잡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이제는 이웃들도 내게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호를 썼고, 내 동생 하랄드의 도움을 받아 우리 집에 몰래 설치한 도청장치를 사용했다.”
아이슬란드의 작가 에이나르 마우르 그뷔드뮌손이 쓴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에는 모델이 있다. 정신병을 앓다가 자살한 그의 형이다. 형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뷔드뮌손이 택한 일은 그 환각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이는 일이었다. 환각제 없이 완벽한 환각에 젖어들어버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뷔드뮌손은 마치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설명하듯 그려냈다. 당신처럼 나처럼 평범하게 태어나 성장했지만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의 병이 들어버린 사람. 정신분열증은 인간의 마음을 느리지만 곱게 갈아버린다. 아무것도, 아무도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논리적인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이해하시라. 어두운 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 세상을 보듯, 이 책은 암전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슬란드라는 유난히 낯선 이국이 무대라는 점도 기묘한 분위기에 한몫 거든다. 주인공은 자신이 겪는 일을 솔직하게 적어갈 뿐이고, 그런 이유로 독자가 감정이입을 하는 대상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된다. 그와 동시에, 자기만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부의 시선으로 재단당하고 병원으로 가야 하는 신세가 되는 주인공의 극한 외로움에도 무심해질 수 없게 된다. 육체적인 병과 달리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되는 정신질환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그뷔드뮌손은 아이슬란드 현대 작가 중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되어 소개된 작가로, 2000년에 아이슬란드의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손 감독이 영화화, 같은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영화음악은 시우르 로스(Sigur Ros)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