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일 열린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영화인 대토론회’는 개최 전부터 김이 빠졌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전 차관이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뒤, “제대로 한번 소통을 해보자”는 그의 제안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계 단체들과 준비한 토론회였다. 하지만 신재민 전 차관은 토론회를 3일 앞둔 지난 8월29일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의 발언에 부랴부랴 토론회를 꾸린 영진위로서도 맥이 풀린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토론회는 열렸다. 유임이 결정된 유인촌 장관이 참석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신재민 전 차관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 오른 모철민 차관이 인사말을 대신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의 박형동 과장이 실무자 자격으로 참여했다. ‘제대로 된 소통’을 내건 토론회의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
물론 신재민 후보자가 낙마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원하는 만큼의 소통이 가능했을 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패널로 참석한 이준동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은 “어떤 사안을 놓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 거란 절망감이 있다”고 말했다. “강한섭 위원장이 재임하던 때부터, 소위원회가 사라지면서 영화인과 영진위 사이의 대화창구가 닫혔다. 문화부가 위원장을 임명할 때도, 강한섭 위원장과 조희문 위원장에 대해 영화인들의 우려와 걱정을 전했는데, 문화부는 그 두 사람을 딱 골라서 임명했다. 내년 영진위의 예산편성안은 영진위가 아니라 문화부에서 짰다.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를 하면 뭐하나. 어차피 조희문 위원장은 버틸 것이고, 지금 나온 예산편성안 그대로 집행할 것 아닌가.” 이춘연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회장 또한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이야기한 바에 대해 영진위와 문화부가 심사숙고를 할지, 신뢰가 가지 안는다”고 말했다.
패널이 제시한 의견에 대한 문화부 박형동 과장의 답변 역시 제대로 된 소통의 의미에 부합되기에는 어색했다. 정진우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은 “대기업의 독과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독과점 조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이에 대해 박형동 과장은 “공정경쟁환경조성특별위원회를 운영하는 영진위와 협의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소위원회의 부재를 이야기한 한 이준동 부회장에게는 “현재 8명의 영진위원이 다양한 분야의 대표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외에 영진위의 지원정책이 간접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우리도 열심히 파악하고 있는데, 직접지원제도에 문제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영진위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서는 “영진위의 정상화에 공감한다”고 답변했다. 영화계가 말하고, 당국 실무자가 답변했으나 소통으로 보기는 어려운 대화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영화계 전반에 걸친 의견교환보다 눈에 띈 것은 조희문 위원장에 대한 성토였다. 패널 중에서도 정진우 이사장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영화산업의 현황을 발표한 발제자에게 “영진위부터 잘 감시해달라”고 말한 그는 이어 “영진위의 지원정책이 간접지원으로 전환된 이유는 영진위 집행부가 지원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문화부가 장악하게 된 것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조희문 위원장이 지난 16개월 동안 온갖 못된 짓을 해서 영진위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망가뜨렸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려고 전화를 걸었지 않나. 촬영소에 있던 장석준 감독의 70mm카메라는 어디로 갔나. 영진위 사옥에 걸려 있던 한국영화 스틸사진들은 또 어디로 갔나. 어떤 수집광에 의해서 사라졌다. 영진위의 윤리규정과 행동강령에 위배되는 짓을 했으므로, 파면시키는 게 맞다. 문화부가 파면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영화인 전체의 이름으로 고발할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의 실무자는 답변하지 않았다. 조희문 위원장은 이미 자리를 뜬 이후였다. 토론회의 성과는 향후 문화부와 영진위의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정말 무엇이든 드러나기는 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