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온 지 7년 만에 비로소 대만중앙영화주식회사(CMPC)의 비매품인 <영화 가이드>를 손에 넣었다. 두권짜리인 이 책의 첫 번째 권은 1982년 출간되었으며,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가 1954년 세운 대만의 가장 오래된 영화 스튜디오가 만든 총 201편의 영화 중 161편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스튜디오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두권 중 하나로, 그동안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친구들이 스튜디오를 그만둘 때 내게 넘겨주기로 여러 해 동안 약속해온 책이다. 너무 오랫동안 이 책을 손에 넣지 못한 까닭에 나는 이 책이 그냥 내 상상력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었다.
첫 번째 권은 1963년에서 1981에 제작한 88편의 영화를 수록하고 있다. 책은 스튜디오 설비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서 중국 역사상 오래전 인물, 스튜디오 조직도, 당시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던 전국 열 몇개의 극장, 앙골라, 리비아와 시애틀을 연결하는 (외국 항공회사 잡지에서 오려낸 듯한) 세계 배급망 지도를 포함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배급망은 모두 홍콩을 통해 연결된다.
카탈로그의 첫 번째 영화는 1961년 일본의 다이에이 영화사가 제작한 다나카 시게오의 시대극 <만리장성>으로, 전설적인 배우인 가쓰 신타로, 야마모토 후지코, 와카오 아야코가 출연했다. 카탈로그는 이 영화를 1963년 제작된 영화로 수록하고 있어서 대만 영화사가 이 영화를 재편집해 중국어로 더빙한 게 아닌가 싶다. 카탈로그에 의하면 이 영화는 중국 만리장성 건설시의 ‘분서갱유와 지식인들의 대학살 및 잔학 행위’를 다루고 있다.
모든 영화의 스틸 사진, 기본적인 제작 출연진 리스트, 중국어와 영어로 된 이야기의 줄거리가 수록된 훌륭한 자료라는 점 외에도 카탈로그에는 국민당 정부의 문화부서가 중국의 역사와 현재의 대만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1964년작인 <검은 숲>은 카탈로그에 수록된 두 번째 영화로, 나무꾼과 대만 산악지대 원주민 소녀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지난 10년간 국민당에 반대해온 대만 감독들은 원주민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대만이 중국 본토와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졌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더이상 카탈로그는 아무도 본 적 없는 영화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참고서적에만 머물지 않을 것 같다. 대만중앙영화주식회사는 제작에 대한 야심과 스튜디오 역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새로운 보스를 맞이했다. 지난 8월1일 스튜디오는 옛날 영화들을 리마스터링한 DVD와 블루레이 디스크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은 2K 레졸루션 디지털로 리마스터링되어 각종 영화제들이 디지털로 상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첫 세편은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과 유순첸의 영화고, 다음 세편은 차이밍량, 첸쿠오푸, 리안의 영화다. 그들은 일년 동안 열편의 영화를 리마스터링할 계획이다.
아직 현역에 있는 감독들의 영화가 리마스터링되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는 영화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진 1960년대와 1970년대 감독과 스타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소한 영화 역사에서 승리한 자들이 쓴 역사가 아닌 진정한 대만 영화사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때까지 나는 이 영화 카탈로그에 의존해야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