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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프란츠, 사이먼 바커] 그분을 만난 건 눈물나는 행운이었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0-09-01

<땡큐, 마스터 킴>의 감독 에마 프란츠, 드러머 사이먼 바커

에마 프란츠, 사이먼 바커 (왼쪽부터)

5살 때부터 드러머의 꿈을 품었던 사이먼 바커는 호주의 유명 드러머가 돼서 한국을 찾는다. 10년 전 자신을 매료시킨 한국의 음악, 그 음악의 주인공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결심 하나로 사이먼 바커는 7년 동안 17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애타게 찾던 이는 세습무이자 장구의 대가이며 무형문화재 82-1호(동해안별신굿) 기능보유자인 김석출 선생이다. <땡큐, 마스터 킴>은 사이먼 바커가 김석출 선생을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사이먼 바커의 친구이자 재즈 가수였던 에마 프란츠가 감독으로 그 여정에 동참했고, 원광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이자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15년간 몸담았던 김동원 선생이 길 안내를 맡았다. 판소리꾼 배일동 명창, 장구의 대가 박병천 명인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6년여 공을 들여 <땡큐, 마스터 킴>을 완성한 에마 프란츠 감독과 드러머 사이먼 바커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언제 처음 만났나. 사이먼 바커 : 1996년에 재즈 가수인 에마가 시드니에 왔다. 운이 좋게도 에마의 공연에 드러머로 참여하게 됐고, 이후 좋은 친구로 발전하게 됐다.

-어떻게 함께 이 영화를 만들게 됐나. 에마 프란츠 : 영화 만들기 전 8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가수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을 음악이 연결해준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음악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친밀해질 수 있는지 그때 경험했다. 그런 경험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에 홍콩에서 사이먼을 만났다. 마침 공연이 있어 홍콩에 갔는데, 사이먼은 한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참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사이먼이 한국의 유명한 샤먼 음악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 했다. 사이먼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당신은 왜 마이크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들기로 결심했나. 에마 프란츠 : 그림이나 사진 같은 시각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 분야 공부를 했었다. 하지만 음악은 내 첫사랑이어서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음악 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예술적 재능을 결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에서 영화로 넘어간 건 내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처음 김석출의 음악을 접한 건 언제였나? 그 음악에 충격을 받았다고. 사이먼 바커 : 김석출 선생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2001년쯤이었던 것 같다. 내게 드럼을 배우던 한국인이 굉장히 특이한 음악이 있는데 들어보라고 했다. 그게 김석출 선생의 장구 연주 음반이었다. 굉장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한 놀라운 사운드였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대단했고, 연주 방식이 특별해서 단번에 끌렸다. 김석출 선생의 음악이 내 음악의 문제점을 고쳐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느꼈던 음악적 갈증은 무엇인가. 김석출 선생의 음악이 채워준 것은 무엇인가. 사이먼 바커 : 무언가가 필요하다고는 느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김석출 선생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 삶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어떤 답답함도 있었고. 일종의 표현의 부재였다. 김석출 선생의 음악이 내 긴장을 풀어줬고,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줬다.

-김석출 선생을 만나기 위해 7년 동안 17번 한국을 찾았다. 별 소득없이 계속 한국을 오간 건데 대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사이먼 바커 : 한국에서 새로운 CD라도 하나 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배움에, 새로운 정보에 너무 목말라 있었으니까. 문을 하나 열면 또다시 다른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아서 CD 한장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올 이유는 충분했다. 에마 프란츠 : 별 소득이 없지만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이먼의 모습이 꼭 고전영화 속 영웅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언론시사회 때 드럼 연주를 선보였다. 징과 꽹과리를 추가해 드럼을 개조했더라. 사이먼 바커 : 맞다. 타악기는 악기 소리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의 악기 중 징을 특히 좋아하는데, 징은 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린다. 징과 함께 연주하면 타악기 자체의 가능성이 무한해진다. 한국의 타악기를 활용한 드럼으로 해외에서 공연도 많이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20여년 함께 연주해온 친구들과 김동원, 배일동 선생과 함께 ‘다오름’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 해외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트럼펫, 피아노, 기타, 드럼은 나와 호주 친구들이 맡고, 김동원 선생이 타악기를 연주하고, 배일동 선생이 노래를 한다.

-촬영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에마 프란츠 : 배일동 선생의 소리를 녹음하러 산에 갔을 때 레코딩 전문가와 동행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비가 내렸고, 무거운 음향장비를 이고 지고 산에 올랐다. 음악하는 무당들이 여럿 모여서 공연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배일동 선생 혼자 폭포 앞에서 노래하고 계신 거다. 장비를 설치하기도 전에 노래를 시작해서 기껏 들고 간 음향장비도 아무 쓸모없게 됐다. 그래서 카메라 마이크로 노래를 녹음했는데, 배일동 선생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폭포 소리에 묻히지 않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촬영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석출 선생 만났을 때도 그랬다. 김석출 선생 집 밖에서 6시간을 기다렸다. 카메라는 세대를 가져갔는데, 안으로 들어와도 된다는 부름을 갑자기 들었다. 카메라 한대만 들고 방에 들어갔다. 김석출 선생이 20분 정도 쭉 얘기하셨다. 그런데 한국어를 알아듣질 못하니 어느 부분이 중요한지 모르지 않나. 그래서 한 자세로 카메라를 20분 동안 들고 있었다. 그 뒤 팔에 알통이 생겼다.

-고대하던 김석출 선생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그러고 3일 뒤 김석출 선생이 돌아가셨다. 당시 심정이 어땠나. 사이먼 바커 : 오랫동안 존경해오던 분을 만났을 땐 그저 놀라웠다. 인생의 끝에 서있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많을 것을 가르쳐줬을 때 굉장히 기뻤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김덕출 선생과의 만남이 있고 몇주 뒤 호주에서 젊은 정치인들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김덕출 선생을 만나게 된 과정을 얘기하다가 감정이 북받쳐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새삼스럽게, 그분을 만난 게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한국인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나? 김동원 선생도 처음엔 당신의 부탁을 거절했는데. 사이먼 바커 : 김동원 선생에게 김석출 선생을 찾고 있고, 만나뵙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었다. 쉽게 도움을 받지는 못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외국인을 덥석 도와주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데 그 한순간뿐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인의 ‘정’에,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았다. 에마 프란츠 :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워져본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에마 프란츠 : 현재 미국 기타리스트의 삶을 다룬 자전적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호주로 돌아가서 호주 음악을 알리는 큰 규모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계속 음악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사이먼 바커 :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올해 마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행의 끝이라는 느낌. 새로운 해에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공연을 선보일 생각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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