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이 국민권익위원회(부위원장 박인제)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았다. 지난 5월20일 조 위원장이 칸영화제 출장 도중 영진위 독립영화제작지원 예심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접수 작품을 강요한” 사실이 확인됐고, 이는 일부 ‘공직자 행동강령’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내부조율이 필요하다”,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작품 접수번호를 불러준 조 위원장의 ‘지극히 개인적인 부탁’에 국민권익위원회가 2개월여 만에 불공정 외압이라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조 위원장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는 8월24일 보도자료를 내 “국민권익위원회가 위와 같은 내용을 해당 감독기관(문화체육관광부)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문에서 자세히 밝히지 않았으나 조 위원장이 어긴 공직자 행동강령은 ‘알선 및 청탁 등의 금지’에 관한 조항으로 알려졌다. 영진위 윤리헌장 행동강령 22조는 “임직원은 자기 또는 타인의 부당한 이익을 위하여 다른 임직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해치는 알선, 청탁 등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충민원 처리와 불합리한 행정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조 위원장을 징계할 수 있다. 그동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은 조 위원장의 외압에 대해 “사과 이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화살을 날리면서도 충분한 법적 근거가 없어 강제로 해임할 수는 없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어쨌든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은 ‘버티기’로 자리를 보전해온 조 위원장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최현용 사무국장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조 위원장의 위법 사실에 대해 행정적인 확인을 해줬다. 이제 감독기관이 어떤 징계를 내리는 것과 별개로 조 위원장이 윤리적인 입장에서 자진 사퇴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통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적어도 조 위원장의 ‘독단’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 영진위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조 위원장이 지원사업 심사위원을 제 맘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안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조 위원장의 저돌적인 추진력에 제동이 걸렸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최근 영진위는 두 차례나 전체 회의를 열어 3D영화, 마스터영화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을 확정하려 했으나 조 위원장과 새로 임명된 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커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영화인은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선정작이 사업 취지에 부합하는지, 조 위원장과 위원들의 이견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위원들이 조 위원장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점이다”라고 전했다. 바깥에서 쏟아지는 비난만큼 내부의 갈등 또한 적잖은 불씨를 안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동안 영진위를 지켜보던 영화계가 한목소리로 조 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하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이 나왔고, 이제 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조 위원장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 된다. 하지만 조 위원장의 거취와 관련해선 어떤 식으로든지 예단하기 어렵다. 조 위원장에게 레드카드를 들어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신재민 장관 후보자의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비리백화점 소리 들으며 혼쭐나고 있는 딱한 상황이다. 조 위원장뿐 아니라 신재민 장관 후보자도 코너에 몰려 있으니, 원. 최악의 장관에 최악의 영진위 위원장을 갖게 된다면 영화인들의 최선은 쭉 악악대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내일도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칠 독립영화인들의 그늘진 얼굴부터 떠오른다.